모두가 연약한 사람
2월의 첫 날부터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잠깐 회사를(비정규직으로) 다녔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하게 되는 운 좋은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출근이란 것을 한 지 2주가 넘었다.
예전의 회사와 지금의 회사는 그 뿌리부터 다르고 업종도, 성격도, 일하는 사람들조차 다르지만 상사에게 깨지는 것만큼은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채이는 것이 신입의 운명 아닌가. 그런데 예전에는 마냥 화가 나고 속상했다면 지금은 거기에 이어 하나의 마음이 더 든다. 상사도, 결국은 나처럼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중이겠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결국은 나를 깨뜨리는 상사도, 나도, 버스정류장에서 차갑게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도 연약한 부분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펑펑 울 장소 하나쯤이 필요하다는 것도.
오픈 살롱의 마지막 수업이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오픈 살롱의 마지막 수업은 '동작 치유' 수업이었다. 동작 치유를 설명하자면 간단하다. 우리가 받은 스트레스나 예전에 겪었던 트라우마, 감정같은 것들은 우리 몸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찾아 춤과 비슷한 동작을 통해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는 개념이다.
작은 연습실에서 모인 우리는 우선 '팀워크'를 측정했다. 손과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기도 하고, 손을 잡은 채로 안으로 돌았다가 밖으로 돌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들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날에서야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 다음으로 했던 '손 작업'은 독특했다. 일종의 '성격 테스트'랄까. 두 명씩 짝을 지어 상대방의 어깨를 안마해주되 손의 '압'에 1부터 5까지 단계를 두어 세게 올라갔다가 다시 힘을 풀어보는 방식이었다. 선생님께서 "1, 2, 3, 4, 5"를 호명하실 때마다 최대한 맞춰보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나는 시작할 때는 잘 맞췄는데, 힘을 풀 때는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확 풀어진다는 평가를 파트너로부터 받았다. 그 결과 내 성격은 시작할 때는 차근차근 잘 계획하지만, 끝나고 마무리까지 촘촘히 하진 못한다는 '용두사미'형이었다. 묵직한 팩폭..
이런 사소한 성격이 내 몸 속 습관들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참가자들도 그 점을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것 같다.
등은 참 신기한 곳이었다. 우리 몸의 앞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숨긴다. 가장 예쁘고 잘난 것만 남긴 것이 우리 몸의 앞쪽이다. 그러나 뒤는 '나' 자신의 가장 솔직함이 묻어난 곳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남에게 보이기 싫은 아주 솔직한 감정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곳. 그런 곳이 '등'이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날 것의 나'를 매만진 것이었으니 울음바다가 된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365일 24시간, 악착같이 나를 보호하려 애쓰던 그 노력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말했듯, 아무리 차가운 상사여도, 차가워보이는 사람이어도, 이 글을 무심하게 보고 있는 당신이라도 가지고 있는 역린같은 것.
"등을 밀었을 때 잘 밀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내면의 힘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어떤 참가자는 선생님의 이 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불안하게 미래를 향해 표류하고 있는 지금, 수도 없이 내가 틀리지 않았을까를 의심하며 사는 지금, 쥐뿔도 없어 보이는데 왜 저렇게 사느냐는 손가락질을 받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등에는 나도 몰랐던 내가 숨어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온기를 포기했다. 사람을 믿기에는 사람들은 너무나 차갑고, 쉽게도 나를 배반하며,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2년 남짓이 걸렸다. 집 앞 거리에 눈이 쌓이고,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졌다가 낙엽이 지고, 다시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 시작했을 때쯤 나는 다소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도 실망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살기 편하더라.
그런데 이 날, 처음 본 참가자가 내 등에 손을 덮었다. 날개뼈를 덮은 손바닥에서 내 등으로 뜨거운 온도가 전해졌다. 불쑥 눈가가 붉어지고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잔뜩 세웠던 내 마음의 벽이 한순간에 무방비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안돼, 아무것도 느끼지마, 하며 꽝꽝 얼려놨던 심장을 등의 따스함이 사르르 녹이는 느낌이 났다.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따스함에 목마른 사람.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서 방방 뛰는 사람. 2년을 돌고 돌아 나는 나를 다시 만난 것이다.
선생님은 내게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따스함을 잃은 것이 결코 내 탓이 아니며, 따스함을 좋아하는 나를 수용해야 한다고. 그래서 때론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내게 “그랬구나. 그 사람이 차가워서 너가 상처받았구나.” 그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3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은 그동안 쌓아온 슬픔을 풀어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날의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이 날을 끝으로, 첫 오픈 살롱이 마무리됐다. 나와 달, 우주에게 도움이 되었던 프로그램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열었던 살롱이었다. 어디서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여기서만큼은 얘기할 수 있는 일종의 '대나무숲'으로서 '블루밍살롱'을 아껴주길 바라며 말이다. 마지막에 "이런 자리를 열어준 세 분께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오래오래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우리만큼 '블루밍살롱'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첫 오픈 살롱은 우리에게도 '블루밍살롱'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누구에게 터놓아도 외롭고, 또는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말들이 넘쳐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모임. 2016년 겨울, 작은 테이블에서 세 명으로 시작한 이 모임이 삼십 명, 삼백 명,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