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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Dec 18. 2017

특별편. 인생 질문

이 글을 읽는 오늘 한 번쯤, 답해볼 만한 


 나는 종교가 없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는 종교에 발도 들여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성경같은 것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힘겨운 일에 직면했을 때마다 누군가는 성경 구절을 생각하거나 염불을 외우기도 한다던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나는 살아가면서 읽은 몇 권의 책들을 내 성경처럼 생각해 왔다. 가끔씩 (자주) 인생이 뿌리까지 흔들고 가는 날이면 붙들고 읽는 책.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싱싱한 깻잎과 윤기가 흐르는 참치회가 들어간 '싱싱 김밥' 레시피가 있다. 그리고 그냥 김밥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 레시피에는 '나를 알고자 하지 않았던 대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양념으로 버무려진다. 그러니까 내가 분명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며, 동시에 어떤 바람을 품고 있는지 알기 위해 부던 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작가가 솔직하게 밝히기를, 그녀는 서른 두 살에야 처음으로 인생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이 노력을 게을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면서 말이다. 

 

 <블루밍살롱>에 '인생 질문'이라는 코너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비슷했다.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결과를 내기 위해 짧지 않은 시간을 노력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자 잠깐 쉬어갈 시간이 생겼던 것이다. 그 틈을 타 여태 생각해보지 않았던 궁금증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그냥 이대로 급하게 취직하는 게 맞을까?', '이 길이 맞을까?',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일까?' 하는 궁금증들. 블루밍살롱의 1년이 지난 지금, '나를 알고자 하지 않았던 대가'는 1년 전보다는 줄어든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오픈 살롱>에서도 '인생 질문'을 이어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픈 살롱의 손님들도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길 바라면서 말이다.





새삼스러운 몇 가지 질문들  

 나와 달, 우주는 우리가 질문하고 답했던 '인생 질문' 중 함께 하면 좋을 몇 가지 질문들을 추렸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씩 골라 질문지를 완성했다. <오픈 살롱>에서 다뤄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Q1.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은 주로 인생의 어느 시기에 머물러 있나요? 과거, 현재, 미래? 어떤 것들인가요? 

 

Q2.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속마음을 털어놓고 후회한 적은 없나요? 


Q3. 자신을 사랑하나요?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질문들이다. <오픈 살롱>은 진행 관계 상 3분 정도 생각하고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질문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의외로 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은 우리가 이미 '스스로를 알고자 하지 않았던 대가'를 어떤 방향으로든 치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더라. 그리고 그건 결국 '후회'라는 하나의 방향이었다. 




후회 하나. 오늘의 시간. 

Q1.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은 주로 인생의 어느 시기에 머물러 있나요? 과거, 현재, 미래? 어떤 것들인가요? 

 나 같은 경우에는 지금의 생각이나 감정이 과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과거의 일들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일을 결정하기도 하고, 또는 과거가 좋지 않았으니 미래가 반드시 좋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휘둘리기도 했다.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혹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주된 감정이었다. 그렇다보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실제로는 잘못되지 않더라도) 과거에 현재의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형상이 됐다. 실제로 내가 가지려고 노력했던 직업은 과거의 어떤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사실 과거의 일을 그렇게까지 해소하려 들지 않는다면 이 직업을 위해 이만큼의 시간을 흘려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실 과거는 불가역적이고, 누구나 조금씩은 틀릴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나처럼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기도 했지만, 반면 미래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계획한 대로 잘 되지 않는다거나, 지금 내리는 선택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 잘 모르겠다거나. 그들은 대부분 미래의 미래에 이 선택으로 인해 또 다시 '그렇게 했어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를 할까봐 두려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오늘의 시간'은 과거를 후회하거나, 또는 미래에 후회할 것을 걱정하는 데에 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오픈 살롱>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오늘의 시간'에 집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후회 둘. 괜히 이야기한 속마음.

 Q2.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속마음을 털어놓고 후회한 적은 없나요? 

 첫 번째 질문에서는 사람들끼리 약간씩 달랐는데, 두 번째 질문은 사람들의 대답이 한결같았던 것 같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후회한 적이 누구나 한번씩은 있는 것이다. 사실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뭐랄까, 그냥 지나가는 이야깃거리로 말한다기보다는 나의 상처라던지, 나의 생각을 달래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어떤 묵시적인 부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속 이야기를 할 때는 제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되지 말아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은 많이 후회했다. 특히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기대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게는 너무나 커다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 때의 고독이랄까. 결국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픈 살롱> 속 '인생 질문'


 이것 때문에 내가 있던 테이블에서는 '웃픈' 일도 벌어졌는데,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주/타로/운세 어플리케이션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 테이블의 거의 모두가 '저도요, 저도요!'를 외쳤으니 우연 같지는 않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모니터 너머의 딱딱한 글자들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는 것은 모순적이면서도 그럴 듯 했다. '이 사람만은 괜찮아' 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가 상처받고 후회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면 말이다. 



후회 셋. '나'를 외면하는 마음 

Q3. 자신을 사랑하나요?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나요? 

 <블루밍살롱>의 두번째 글에는 심윤경 시인의 시 한편이 실려 있다. (https://brunch.co.kr/@wallflower/12) 내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중요했다는 것인데, 사실 그게 '나 자신'이라는 시다. 그마만큼 우리는 '나'에게 인색한 경우가 많다.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좋지 않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면 '이게 기분이 나쁜게 맞는지'를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가끔 블루밍살롱의 달과 우주에게 '내가 기분이 나쁜 게 이상한 게 아니지?'라고 되묻는데, 그 때마다 달과 우주는 내 감정을 의심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해 준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작은 사례지만, 내가 나를 얼마나 '화내지마', '기분 나빠하지마', '너가 이상한 거야', '그냥 넘겨' 같은 말들로 혹독하게 다뤄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나는 달과 우주에게 저런 말을 듣기 전까지도 이게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 질문에 다다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들 입을 뗀 첫 마디가 '잘 모르겠다'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까지는 이야기하더라도,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등 다른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신경 쓰고, 기념일이나 생일, 중요한 날에 무언가로라도 애정을 전하려고 기울이는 노력을 생각해보자. 적어도 나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쓰며 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조차도 나를 외면했으면서 내가 하는 일은 잘 되길 바라다니, 이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심지어 또 안 되면 나를 비하하기도 반복해 왔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그 인색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잘 해온 스스로를 칭찬해 주는 것이 좋겠다. 여태까지 잘 해주기는커녕 외면만 해왔던 지난 날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루어 왔는지를 깨닫고 앞으로는 덜 후회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오늘에 집중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도 찾기를, 또 마지막으로는 자기 자신을 아끼면서 살 수 있길. 이 글을 마무리 하며 <오픈 살롱> 2회 피드백 포스트잇을 보고 있자니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몇 가지 따뜻한 말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다 다르지 않고 비슷한 것 같아요. 

● 비슷한 힘듦을 갖고 있어요. 


● 위안과 위로도 얻었고 :) 


● 다들 따뜻하고 분위기가 편안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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