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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

고요함이 주는 힘

by 연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반드시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는 충전을 필요로 하게 된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스위치 오프’ 상태가 된다. 에너지를 충전함으로써 또다시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할 수 있다.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처음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나는 늘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먼 동네 하나로 향했다. 한켠에 자리한 동네 책방은 나의 단골 공간이었다. 한창 책을 구경하고 나와 오분 정도 걸어가면 한강이 나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하염없이 한강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일몰이 다가왔다. 그 순간만큼은 연인도, 친구도 필요하지 않았다.


로스쿨에 다닐 때의 나는 한창 수험생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요동치는 감정을 보살펴주었다.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있던 서울숲이 단골 산책로가 되어주었다. 늦은 밤 공부를 마치고 나면 후드티에 모자를 뒤집어쓴 채 어둑한 서울숲을 돌아다니곤 했다. 심호흡을 하며 내 안의 걱정과 불안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만족스럽게 산책을 마친 날에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고요하다. 내면의 소음을 걷어내고 그 자리를 침묵으로 채운다. 외부로 향해 있던 신경의 스위치를 끄고, 그 방향을 나의 안으로 돌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을 통해 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차단하고 당신 자신의 침묵을 빚어내는 것이다.” (엘링 카게 지음, <자기만의 침묵>)


오늘은 유독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었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약속 뒤에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나는 홀린 듯이 버스를 타고 가까운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공원엔 거의 사람이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어지러운 감정들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마침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 하루를 돌아보았다. 사람들과 섞인 채 보냈던 긴 기억은 희미했고, 혼자 보낸 30분의 시간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혼자인 시간을 틈틈이 만끽하고 싶다. 공허를 침묵으로 메우며, 오직 스스로의 내면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 그렇게 충전한 나의 에너지는 다시금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쏟을 때 아낌없이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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