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주제 넘는 조언을 건넬 때가 있다. 가령, 나는 친구의 고민을 듣던 중 내가 오래 고민했던 주제가 나오면, 신나서 나의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을 때가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 마치 너에게도 정답일 것처럼 말한다. 너에게도 나의 방법이 통할거야, 단정짓는다.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그 말이 오지랖이었음을 깨닫고는 후회한다. 왜 그렇게 신중하지 못했을까 되뇌이면서.
나와 타인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쌓으며 살아왔다. 나에게 정답인 것이 그에겐 오답일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기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는, 상대가 조언을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함부로 끼어들어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멋대로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그의 생각 속으로 침범한다.
로스쿨 재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형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먼저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조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년간 지켜본 바로는, 형은 그 원칙을 충실히 지켜왔다. 묻지 않은 것에는 침묵했다. 타인에게는 그만의 정답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조언이 가지는 무게를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신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가볍지 않은 사람'의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원칙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열어주지 않은 문을 함부로 밀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애정하는 사람이어도 그렇다. 애정과 침범은 다르다. 좋아할수록 그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거리감각'이 필요하다. 관계에서의 거리감각이란, 함부로 다가서지 않을 수 있는 감각이고, 나와 그를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는 감각이다. 그렇기에 그 감각은 오직 마음 깊은 존중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조언을 구했다면,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하면 된다. 그럼에도 조언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사람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나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지, 그 사람이 겪어온 과정 속에서도 내 조언이 유의미할지, 고민해본다. 부정확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 모든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다가서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매일 그 사람을 모른다는 깨달음을 반복하는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이해를 시작할 수 있다. 나라는 편견을 내려놓을 때 진정 그 사람의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거리감각은 결코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정확한 관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이다. 애정할수록,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