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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정성을 다하기

나를 소중하게 돌보는 감각

by 연휴

흔히 정성을 다한다는 말은 일할 때 많이 쓰인다. 그러나 꼭 일에서만 정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나 자신 또한 있다. 나는 오직 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다할 필요가 있다. 나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신경 써주고 돌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를 소중하게 돌보는 감각’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지켜주는 방파제가 된다.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상의 루틴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나에게 대표적으로 그런 순간은 샤워하는 때이다. 과거 나에게 샤워라는 것은 자기 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활동 정도였다. 그저 빠르고 기계적으로 몸을 씻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늘 샤워실에는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갔다. 유튜브로 영상을 틀어놓은 채 화면만 쳐다보며 샤워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몸만 이끌고 샤워를 하러 간 어느 날이었다. 집중할 휴대폰이 사라졌기에, 대신 샤워할 때 느껴지는 몸의 감각에 집중을 해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몸을 데워 이완시키고, 구석구석 샴푸로 몸을 꼼꼼하게 닦고, 샤워를 마친 직후 은은하게 나는 좋은 향을 맡고…. 그 작은 감각들에 신경을 쓰다보니 샤워 시간이 꽤나 길어졌다. 대신 ‘나를 깨끗이 한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샤워만 잠깐 했을 뿐인데도 묘한 보람과 기쁨이 생겨난 것이었다.


바로 그때 샤워가 내게 주는 새로운 의미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샤워라는 활동을, 하루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몸을 정갈하게 씻는 의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동시에 그만큼 정성을 다하고 싶어졌다. 정성을 다할수록 샤워를 끝내고 난 뒤의 기분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이러한 관점을 집안일 전반으로 넓혀갔다.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들에 의식적으로 정성을 기울이려 했다. 내 몸 어딘가를 닦는다는 느낌으로 꼼꼼하게 집 안 곳곳을 청소했다. 정갈하게 테이블 위 물건들을 정리했다. 느리지만 되도록 예쁘게 옷과 수건들을 갰다. 평소였다면 몹시 하기 싫어했을 귀찮은 일들이었다. 안 하면 안 되니까, 하는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했을 일들이었다. 그렇지만 정성을 다한다는 관점으로 집안일을 대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나를 위해 성의를 다하고 있다는 기분 자체가 좋았다. 하루의 빈틈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일은 아주 단순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한 일이라 한들 그 순간에 몰입해 정성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금방 좋은 기분을 얻어낼 수 있다. 이만큼 좋은 가성비가 있을 수 없다. 좋은 기분이 쌓이니 좋은 하루가 되었다. 특히 하루의 마무리를 이러한 활동으로 매듭지으니 왠지 모를 안정감까지 생겼다. 결국 정성을 다하는 태도의 핵심은, 신체와 집과 옷이 깨끗해진다는 결과에 있지 않다. 내가 나를 성심껏 돌보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본질이다. 이 감각이 쌓이고 쌓이면 단단한 자존감의 밑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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