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소모하는 삶의 태도
휴대폰을 구입한지 3년이 되어간다. 사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배터리가 점점 빨리 닳기 시작했다. 충전과 방전을 오가며 배터리는 점점 수명을 다해간다. 그래서 요즘은 효율적으로 배터리를 관리하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나서는 중이다. 불필요한 소모를 막기 위해 여러 설정들을 변경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반드시 100%로 충전해두고 하루를 시작했다. 꼭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사용을 자제하려고 한다(...그런데 이건 쉽지 않은 것 같다).
배터리는 에너지 총량이 정해져 있다. 방전하지 않고 현명하게 쓰기 위한 '관리'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사람에게도 이 법칙이 거의 동일하게 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 매일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이며, 각자에게는 소모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일이나 공부는 집중력의 에너지를 쓰는 일이고, 연인과의 갈등은 감정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다. 반대로 잠이나 휴식, 취미 활동을 통해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기계의 배터리가 지나치게 적어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성능이 저하된다. 완전히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한계마저 넘어서면 기계는 방전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집중력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면 이해력과 사고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감정의 에너지가 닳으면 스트레스가 커지고 괜히 예민해지거나 날카로워진다. 이윽고 방전에 이르면 '번 아웃'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찾아온다. 이 모든것들은 결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총량 자체를 늘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 총량도 다르다. 어떤 이는 집중력의 에너지는 평균보다 높지만, 감정의 에너지는 평균보다 낮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나를 탓하거나, 자신보다 에너지가 많은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모든 것을 '의지'의 문제로 돌리면 자책감만이 남을 뿐이다. 그 자책감이 또 다시 에너지를 소진시키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나의 에너지 총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며, 내 마음대로 쉽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총량을 늘릴 수 없다면, 나에게 주어진 총량을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관리'란, 결국 나를 현명하게 소모하기 위한 모든 일들이다. 종종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은 무엇이 나를 특히 소진시켰는지, 그 요소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신경쓰는 것은 스스로 충분한 충전의 시간을 가졌는지 떠올리는 일이다. 전날 휴대폰을 제대로 충전하고 자지 않으면, 훨씬 적은 배터리 상태로 다음 날을 버텨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충분히 잠을 자야 하고, 때로는 현실에서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자기만의 회복 루틴을 하나쯤은 갖추어두어야 한다. 바쁠수록 이러한 시간들을 무익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충전은 그 바쁜 순간을 보다 잘 돌파해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매일을 지내다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다 잘 가려낼 수 있게 된다. 가령 남는 시간에 온전한 휴식 대신 숏폼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 시간을 잠깐의 산책이나 명상으로 대체해볼 수 있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음을 깨닫는다면, 그 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해볼 수 있다. 자책감이 습관이 되어 자신을 소모시키고 있었다면, 자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논리적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은 삶에서 여러 유익한 기준을 만들어준다.
나는 현명하게 소모하는 삶을 살고 싶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결국 나를 방전시키는 길로 가고 싶지 않다. 반대로, 소진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에너지를 아끼기만 하고 싶지도 않다. 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길 원한다. 소모와 충전을 건강하게 반복하는 과정이, 곧 좋은 삶을 위한 리듬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