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다짐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머릿속의 생각과 감정을 '눈에 보이게' 꺼낼 수 있다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생각과 감정은 무의식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아직 실체가 없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때로는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자책들,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생각들이 그렇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순간 '언어'라는 실체가 생긴다. 생각이 눈에 보이고, 감정이 손에 잡히게 된다. 친구에게 전화로 지금의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쓰다가 비로소 그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될 때가 있다. 떠다니는 생각들을 차분하게 글로 쓰다보면 자연히 내 생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언어는 우리의 내면을 보다 명료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창과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생각이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은 생각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 확신을 갖고 있던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면, 막상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빈틈이 마구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큰 우울과 절망에 휩싸여 일기를 끄적이다가, 생각보다 그 일이 좌절할 만한 것이 아님을 납득하게 되기도 한다. 언어라는 것은 명료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해 준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언어가 가진 정반대의 속성에 대해서도 실감하게 된다. 가령 나는 다 쓴 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신중히 골랐던 어떤 단어가 사실은 내가 표현하려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의 감정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는데, 이때의 생각은 이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하면서. 무언가를 명료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은, 때로 중요한 부분을 깎여나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누군가를 '악한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만 보인다. 반대로 '선한 사람'으로 보려 하면, 정말 그렇게만 보이기도 한다.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언어는 때로 사람의 고유한 생동감을 '죽게 한다'. 그래서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사실 '단순화'라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일이다. 때로 명료함은 편견과 오류를 낳는다. 눈에 보이게 하려다 오히려 무언가를 더욱 못 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이러한 단순화를 무엇보다 경계하려 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으려 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각들을, 사람들을 '죽게' 하지 않으려 애쓰기로 한다. 결국 글쓰기는 아주 신중하게, 정확한 언어를 찾아나서는 모든 과정이다. 그 지난한 과정 끝에 이른다면, 비로소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