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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저점을 견디는 법

감정은 '리듬'이기에

by 연휴


마음이 어지러울 때가 있다. 엉켜서 풀어지지 않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럴때면 차분히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는 한다. 물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유들이 얽히고 설켜 더 이상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이유 없는 것에 다름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감정들도 있다.


모든 감정의 원인을 그때그때 깨끗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복합적인, 예상 못한 변수들이 수많은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나는 스무고개하듯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감정의 뿌리를 찾아본다.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신경쓰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최근에 스트레스 받은 일은 무엇인지. 답하기 쉽지 않은 날들이 많다. 나도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감정은 '리듬'과 같아서, 저점과 고점을 끊임없이 오가며 흘러간다는 것이다. 내려갔다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는 형태로. 감정이 기울어지는 데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어떤 저점은 단순히 고점이 지나갔기에 찾아온다. 특별한 시도를 하지 않더라도, 저점에 있던 감정이 다시 저절로 올라가기도 한다. 마음은 결코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음이 저점에 달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순하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이 그저 찾아올 때가 되어서 찾아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또한,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다음 리듬이 찾아오기까지 필요한 것은 인내심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수많은 생각들로 채워진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억지로 부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구름처럼 커져가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통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나는 시냇물 앞에 앉은 내 모습을 떠올린다. 좌절, 무기력, 우울, 부적절감은 시냇물 위에 흘러가는 조약돌이다. 유유히 눈 앞에 나타나, 다시 저 멀리 사라진다. 나는 다른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멍하니 관찰한다. 흘려 보낸다는 건 그런 의미이다.


저점의 시간이란 감옥 안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목표를 달성해서 탈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만큼의 인내만이 필요한 것이다.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창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한 걸음 발만 내딛으면 빠져나올 수 있다. 뒤돌아 차분하게 저점의 시간을 되돌아 볼 약간의 여유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다시 고점이 찾아올 것이고, 그 뒤에는 다시 저점이 찾아올 것이다. 감정은 리듬이니까. 이 사실을 항상 떠올릴 수 있다면, 앞으로 찾아올 무수하게 가혹한 저점들을 견딜 조그만 힘 정도는 가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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