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방금 전에 왜 그렇게 말했지?' '왜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했지?' '오늘 내가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나는 자주 내가 부끄럽다. 종종 떠올린 스스로의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실수하거나 놓친 것들, 부족했던 모습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어떤 날의 일기는 길게 쓴 반성문 같다.
적절한 자기반성은 도움이 된다. 부족한 면과 마주하고, 방향을 고민하는 일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반성이 과해질 때가 있다. 문제에 직면하기보다는 자신을 깎아내리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자기반성보다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모습이다. 반성과 혐오의 차이는 단순하다. 나의 부족한 '면'에 집중한다면 반성이지만, 부족한 '나'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혐오다. 자기혐오는 누구나 저마다의 흠결이 있다는 사실을 뒤로 하고, 작은 흠결이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나는 혐오로 위장한 반성을 경계하려 애쓴다. 누적된 자기혐오는 사고 체계를 파괴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를 부정적으로만 보이게 한다.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극심한 심적 고통을 준다. 물론, 건강한 자기반성 역시 약간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것은 성장통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반면, 자기혐오가 주는 고통은 그 자체가 이미 목표이다.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기본값'이 되면 삶은 늪으로 빠져든다.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고통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픔을 주는 생각들을 헤집어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아픔 자체에만 취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통의 감정이 든다면, 피하지 않고 파헤쳐 들어가야 한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생각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혹시 거짓되거나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과하게 부풀려진 면은 없는지,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렇게 불필요한 자기혐오를 걷어내고, 건강한 반성의 사고 회로를 세워가야 한다.
건강한 반성은 자기혐오가 아닌 '자기성찰'이다. 자기성찰의 기본 전제는 자신에 대한 존중과 수용이다. 내가 완벽하고 대단한 존재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므로, 삶에서 당연히 반복하는 실수와 잘못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혐오가 과거지향형 감정이라면 자기성찰은 미래지향형 감정이다. 지금의 아쉬움을 토대로,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태도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다. 부족한 내 모습도, 저지른 실수도, 느껴지는 수치심이나 고통도, 직면해야만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직면이란 '구체화'하려는 태도이다.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차근차근 떠올리는 것이다. 물론 생각에서만 멈추면 안 될 것이다.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은 반성은 정체한 것에 다름 없기 때문이다. 자기성찰은 실행에 의해 완성된다.
자기혐오에 허우적대던 시기가 있었다. 자기비하에 중독되어 있던 시간들의 끝에서, 나는 그 모든 고통이 반성도 성장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감정들에 조금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의심과 아픔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배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이해된 고통은 건강한 성찰을 안겨준다. 그렇게 믿으며 느리게 나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