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기회가 없는 요즘 여행에 대해서
일본에 온 첫날,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을 작정으로 숙소를 나섰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문득 발견한 음식점에 충동적으로 들어가기까지만 해도 진짜 도시락을 먹을 작정이었다. 그래도 여행 첫날인데 아무리 피곤해도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냉장고와 집기들로 채워진 복도를 지나니, 반쯤 오픈이 된 주방과 바 테이블이 나왔고 그 뒤로 두 개의 좌석이 있었다. 주인분은 나에게 일본어로 무어라 말했고, 나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몇 명이 왔냐고 묻는 것 같아 대뜸 검지 하나를 올렸다. 그러자 바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이 "한국인? 한 명?"이라고 물었고 나는 그 손님 옆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메뉴판을 받았는데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오로지 일본어로 적힌 메뉴판은 도저히 뭐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 참담함을 공유하기 위해 SNS에 메뉴판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한 친구에게서 번역기를 써보라는 DM이 왔다.
의아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 아닌데, 심지어 태국에서 한 달도 넘게 머물다 왔는데 어떻게 사진 번역기를 써본 적이 없던 것인가. 생각해보니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냥 냅다 마음에 드는 글씨를 하나 찍어서 주문했다. 손을 들어 직원분을 소심하게 부른 뒤 메뉴판에 있는 아무 음식이나 가리키며 '디스 원'이라고 말하면 이름도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음식이 나왔다. 어떤 때는 평범한 고기가 올라간 덮밥이 나왔고, 어떤 때는 쌀국수 비슷한 국물류가 나왔다. 입맛에 너무 맞지 않아서 몇 번 먹고 다 남겼던 음식부터 태국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방콕의 어느 길거리에 있던 족발 덮밥까지 성공과 실패를 아주 가볍게 넘나들었다. 그에 반해 첫날을 제외하면 일본에서는 구글맵에 잔뜩 저장해둔 맛집과 명소를 번역기와 리뷰에 의지한 채 여행하고 있었다.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이 꼼꼼하고 치밀하게 최단 시간의 거리로 이동하며, 중간중간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길을 잃은 적도 맛없는 음식을 먹은 적도 없지만,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쯔음 등 뒤로 들려오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감흥이 깨져버렸다. 어딜 가도 이름과 얼굴 모르는 동행이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모으진 않았지만 각자 알아서 한 개의 노선을 따르기 위해 모여든 기분. 이름하여 실패하지 않으려는 모임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20살 초반 첫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동안 떠난 태국여행에서는 내 멋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을 하며 다녔다. 그렇게 이름도 기록도 남지 않은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니 누군가 태국에 가서 어딜 가봐야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곳은 안 가서" 대답을 얼 버부리며 실패로 가득한 나의 여행을 기억 속에만 남겨두고 있었다. 누군가 따라 하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루트를 말이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된 나는 어느덧 실패를 두려워하는 여행객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기꺼이 나의 취향쯤은 냅다 버리고 사람들이 이미 가본 뒤 맛있다고 남긴, 음식점과 경로로 그들의 흔적을 따라서 여행하고 있었다.
돈키호테의 수많은 물건 속에서 필요하진 않지만 일본에 가면 꼭 사라는 목록에 따라서 '동전파스' 따위를 바구니에 담으며 여행을 하다 보니 피로가 밀려왔다. 나는 도시 여행이 맞지 않는 건가 생각했지만, 후쿠오카 메인 거리에 큰 쇼핑몰에 입점한 중고 카메라 가게에서는 누구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자연이 도시보다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기보다 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맛집보다 더 즉흥적으로 끌리는 식당, 꼭 사 와야 할 물건보다 누군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1964년에 만들었다는 필름 카메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구글 맵 없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만의 취향으로 거리를 거닐며, 기꺼이 실패를 하는 여행을 해야지.
22년 11월 24일 목요일 후쿠오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