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이 있나요?

회사를 박차고 나온 프리랜서 1년 차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by 월터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이 있나요?"라고 친구 A가 배우에게 물었다. A의 영화 대본 리딩 현장을 도와주러 갔다가 들은 말이었다. A는 시나리오 주인공이 회사에 적응을 못하며, 줄곳 답답한 느낌을 받는 설정이라고 했다.


회사를 다니던 때, 그런 순간을 수 없이 마주했었다. 출근하는 길에 만원 버스를 보며, 지하철을 기다리기 위해 죽 늘어서 있는 사람을 보며, 회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하루에도 수만 번씩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종종 그 기분에 빠지고 만다.


일주일에 몇 번 되지 않는 촬영을 하러 갈 때도 아니고, 편집을 하려고 책상에 앉아있을 때 드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건 내 글을 쓰고 내 작품을 쓸 때 드는 마음이었다. 내 작품에 더 몰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어쩐지 회사를 다니며 글을 쓸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마음 한편이 너무나 무거워서 삶의 원동력이었던 창작을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 증상이 심각해진 건, 결과가 하나씩 도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난생처음 만든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고, 책을 쓰고, 영화제를 만들고, 실행한 결과물들이 쌓일 때마다 더 잘하고 싶어 졌다. 또 이것밖에 못하는 자신이 아쉬웠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길,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길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내길 스스로에게 간절히 바랐다. 결과는 어쩌면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자 나를 다그칠 채찍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턱 막혔다.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잘하고 싶지만 시간은 부족했고 내 실력도 미천해 보였다.


회사를 나오면서 가슴이 턱 막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가슴이 막힌 채로 살아갈 것이고, 나는 결과가 나오면 그 순간 해방되는 숨 트임에 중독되어 또 다른 결과를 만들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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