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인간

나의 실패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당신에게

by 월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그러자 "누구보다 재미있게 잘살고 있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삶의 여유가 없어 보일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시간을 쪼개면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 도전하지만, 혹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나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변엔 좋은 사람이 가득하여 나를 위로하는 좋은 말들이 도처에 깔려있기에 가끔은 이들의 말에 안도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은 불쾌한 말을 듣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오지도 않은 나의 '실패'를 염두하고 위로하는 것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단편영화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을 때 들은 말이었다. 단편영화 제작 경험이 나보다 많았던 그는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열심히 만든 작품이 상상보다 별로여도 크게 실망하지 마세요."


그때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 기분이 나빴다. 아주 차분하고 침착한 그 말이 손톱 끝에 박힌 모래알같이 느껴졌다. 잘 빠지지 않아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에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그 후 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상영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조언을 받았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해요."


영화제에 상영하고 난 뒤에 다음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 보겠다는 나의 말에 되돌아온 말이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으라니, 찰나의 성공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를 거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 어린 내가 너무나 큰 꿈을 좇아 위태롭게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기에 걱정 어린 말을 한걸 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기분이 나쁘기만 했을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이 우려한 것처럼 나는 마냥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며, 내가 이룬 것에 대해서 행복해하는 기간이 남들보다 현저히 짧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스러우며 예민하다.


올해 가장 힘든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힘들어서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 가서 아침 댓바람부터 맥주나 마시고 멍멍이랑 산책하고 싶어요."


나의 말을 들은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주 확실하네요. 좋다."


그때 나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영화감독이 되지 못하고, 가진 게 쥐뿔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나는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멍멍이 한 마리, 노래방 기계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마음껏 도전해 보아도 괜찮다고 도전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해도 나는 누구보다 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기에 안심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니 만약 나를 만났을 때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고 긍정적인 모습이 보인다면 그 행복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머물다가 아주 잠시 웃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 아무리 당신이 나의 실패를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니, 내가 아닌 당신의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나의 행복을 시셈하지 말고 본인의 행복을 찾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