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면 일 년에 책 두 권씩 낼 줄 알았지 뭐야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있던 물건을 다 처분하기로 했다. 3년 이상 읽지 않는 책들은 팔아버리고, 입지 않는 옷과 쓰지 않는 물건은 버리기로 마음먹고 서랍장을 열었다. 거기엔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고 책 위로 잡동사니들이 아주 너저분하고 곧 떨어질 듯 간당하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넣어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사거나 받아서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은 가볍게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책은 그럴 수 없었다.
책은 지금 당장은 읽지 않아도 언젠가는 꼭 읽을 것 같았고, 그 당시에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들이 있기 때문에 미련이 다른 물건들보다 훨씬 많이 남았다. 그렇게 한참 둘러보다가 참고서를 제외하면 버릴 만한 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미련이 남으면 일단 다시 한번 읽어보기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책을 구매하지 않을 작정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집으로 회사를 다니던 시절, 연재하던 걸 꼬박꼬박 챙겨보다 결국 출간 후 구매까지 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등단을 했지만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일상이 담겨있었다.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가다 보니 당시 회사를 다니며, 결국 전업작가가 된 박상영 작가가 마냥 부러워했던 것이 기억났다. 책에서 전업작가의 삶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말 너무나 부럽기만 했다. 출근하지 않는 삶이라니, 나에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같은 일이라고 여겼다.
당시에 회사를 다니던 나는 지각쟁이였다.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때문에 연차를 쓴 사람과 지각을 하는 사람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 전체 메신저에 연차 사용 여부와 지각하게 되는 이유를 써서 올려야 했다. 거기에는 나의 메세지가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오늘 지각입니다. 죄송합니다.
- 21년 1월 12일 9시 33분. 월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빨리 가겠습니다.
- 21년 1월 15일 9시 29분. 월터 -
나는 스스로 아침잠이 많고 참 게으른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되고 난 뒤에는 지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침잠이 많다고 생각한 나는 9시가 되면 알람 없이 일어나서 운동을 가거나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오전을 여유롭게 보내고 나면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화방이나 코인 노래방에 들러 유흥을 즐겼다. 그리고 씻고 잠들면 다음날 또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사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전 회사의 일을 받아서 하기 때문에 회사를 다닐 때랑 하던 업무가 달라진 게 아닌데도 그랬다. 만약 영상 편집 수업이 있거나 촬영이 있는 날이면 아침 일찍 촬영지 혹은 수업하는 곳 주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일을 하러 갔다. 그러니 나는 절대 늦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 여전히 글을 열심히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설 작가 등단을 목표로 스터디를 하며 매달 한 편의 단편소설을 쓰기로 했지만 프리랜서가 된 후로 오히려 더 마감기한을 못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로 출퇴근하면서 뺏기는 시간이 줄고, 일을 하는 시간을 내가 정하니 단편소설 한편쯤은 마음먹을 때 뚝딱 써 내려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항상 스터디원들과 마감일을 정할 때면 마감 전주까지 꼭 완성해서 수정하고 보내야지 생각하지만, 그런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비슷한 질량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데, 나의 지각량도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듯싶었다.
무려 회사를 다니며 책을 3권이나 낸 박상영 작가처럼 나도 다음 연도에는 꼭 등단을 하리라 다짐했다. 언젠가 그처럼 나도 문학동네에서 등단하고,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는 날이 오길. 그렇게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덮으며 다짐했다.
"오늘 밤은 꼭 쓰고 자야지."
22년 12월 1일 목요일.
마감이 오늘까지인 편집을 미루고 미룬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