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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Dec 17. 2023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은 홍콩 카페

홍콩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

홍콩 여행의 첫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서 3시간, 버스에서 1시간 구겨져 있었던 탓이었을까. 날갯죽지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막을 틈도 없이 목을 타고 올라와 두통이 되었다. 홍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으니, 첫날은 숙소에서 쉬어도 되었지만 배가 너무나 고팠다.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었다. 두통으로 쓰러지기 전에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뭐라도 사 올 작정으로 숙소를 나섰다.


홍콩의 밤


어두운 홍콩 거리는 너무나 신선했다. 빽빽한 빌딩들 사이엔 오래된 것들과 요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건물의 윗부분은 사람들이 사는지 몇몇 창문에 빨래가 걸려있었고, 창문은 과연 한 번 열면 닫히지 않을 것처럼 낡아 있었다. 큰길로 나가니, 마치 명동의 거리처럼 다양한 쇼핑 매장과 음식점으로 가득한 거리가 나왔다. 머리가 아파서 간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쓰니 그제야 시야가 선명해졌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다. 새로 맞춘 안경은 난시 도수가 높아서 적응되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본 홍콩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바닥은 높이 올라와 있었다. 광각렌즈를 들고 짐벌 없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찍은 영상처럼 어지럽고 산만했다. 24시간 국숫집에서 밥을 대충 먹고 돌아가 잠이 들었다. 부디 내일은 컨디션이 괜찮길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다행히 컨디션이 전날보다 나아졌다. 어깨에 통증은 여전했지만, 두통은 가신 상태였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목적지 없이 걸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늘 그렇듯 충동적인 여행엔 계획이 없으니, 거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의 모든 목적을 이룬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홍콩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왕가위 영화에 나오는 촬영지도 아니고, 살면서 한 번쯤 사진을 봤을 법한 유명 관광지도 아니었다. 간판도 없어서 찾아가기 힘들기로 유명한 카페 ‘mum's not home’이었다.


홍콩의 거리


이 카페에 흥미가 생긴 건 즐겨보는 유튜버의 말 때문이었다. 홍콩 여행지를 추천해 주던 유튜버는 이 카페를 소개하면서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상 속의 카페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또 3걸음에 하나씩 카페가 있는 서울에서 찾으면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분명 좋아할 거라는 확신에 찬 유튜버의 목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는 낡디 낡은 건물에 있었다. 카페를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낙서를 보고서야 잘 찾아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페 입구엔 초록색 철문으로 닫혀있었다. 문 옆에 초인종 벨을 누르니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분을 따라 커튼을 걷고 카페 내부로 들어가니 전혀 다른 세상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록색 식물이 가득하고 형형 색색의 물감으로 그린 그림들, 갖가지 소품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지만 하나도 지저분하지 않았다. 어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머리를 써서 소품들을 베치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물건이 늘어나듯, 많은 물건들이 제 각각 본인의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카페 모습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메뉴를 주문해야 했다. 직접 그린 메뉴판을 보면서 음료 하나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방금까지 내가 걷던 약간은 삭막한 홍콩의 거리가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흑백 영화가 컬러 영화로 바뀌듯 자극적 자극이 극대화되었다. 화장실에 있는 물건들도 하나하나 천천히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볼일을 보고 냄새가 걱정되면 사용하라고 놓인 성냥과 벽에 걸려있는 근육 인어맨까지 너무나 완벽한 소품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기차 소리였다. 화장실에선 기차가 달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계속 나왔다. 민망한 소리를 감추기 위해 틀어지는 화장실의 음악 중에 가장 센스 있는 소리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카페 내부를 사진 찍었다.



카페 내부를 둘러볼수록 ‘mum's not home’이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누구라도 느껴봤을 엄마가 집에 없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자유. 어떠한 행동이든 해도 괜찮은 공간이 바로 홍콩 카페에 있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그대로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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