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소로아의 생가이자 미술관, Sorolla Museum
스페인 여행 중에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예술가의 생가였다. 스페인의 유명 예술가로는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오 가우디, 호안 미로, 프란시스 고야 등 이름을 다 언급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기도 하는 피카소와 달리가 살던 지역은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작품을 만들던 당시에 머물던 공간을 가보고 싶었다. 하필이면 피카소의 생가가 있는 스페인 남부 지역의 말라가(Malaga)는 바쁜 여행 일정에 끼워 넣을 수 없었다. 또 달리의 생가가 있는 스페인 북부 까탈로냐 지역도 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마음을 상대적으로 큰 도시에 건축물을 설립한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는 것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책이나 미디어에서 접한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웅장하고 멋졌다. 까사밀라는 부자들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였기에 그 당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일상을 보내며 살았는지가 보이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린아이와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큰 응접실, 하녀들의 작은 방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이 가우디가 실제로 살았던 곳이 아니라는 게 아쉬웠다.
작품보다 예술가의 개인적인 공간을 보고 싶은 건 한 사람이 쓰고 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그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책상은 방 중앙에 있는지 아니면 문을 마주 보고 있는지, 창 앞에 있는지 따위가 그들의 작품을 볼 때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공간을 직접 가보는 것은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방법의 하나였다. 하지만 일정이 빠듯하니 무리를 해서 갈 수 없는 노릇이나 다음을 기약하며 스페인 여행을 마칠 예정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여행하던 중 호아킨 소로야의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숙소랑도 되게 가깝고 심지어 토요일 오후엔 입장료가 무료였다. 작품을 잘 아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가 살았던 곳에서 걸린 여러 작품을 볼 기회를 마다할 수 없었다. 소로야의 박물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 관람인 탓에 입장을 하려면 대기를 해야 하는 듯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걸어오면서 사 온 콜라가 미지근해지고 땀이난 얼굴에 머리카락이 다닥다닥 붙일 때쯤 내부로 입장했다.
커다란 주택 구조의 소로야의 박물관은 입장과 동시에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는 커다란 정원이 펼쳐졌다. 그걸 본 첫 감상은 아름답다 멋지다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예술을 하고자 하는 지망생의 얄궂은 질투 같은 감정이었을까. 역시 이런 재력이 바탕이 되어야 예술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씁쓸하고 냉소적인 생각이 스쳤다.
정원에는 햇빛을 피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저마다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간이 지나도 햇빛과 식물 약간의 그늘은 사람을 참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전시실로 걸음을 옮겼다.
본격적으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은 2층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안내인으로 보이는 분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무문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흐릿해지자 높은 천장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벽 곳곳에 걸려있는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들과 바닥에 깔린 카펫, 그가 직접 썼던 걸까 혹은 재연한 걸까 호기심이 드는 생활품까지 놓여있었다. 그는 작품에서 본인의 가족을 많이 그렸다. 어린아이들부터 나이가 있는 가족들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작업실에서 나는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냉소적인 생각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떠올랐다. “이런 곳에 있으면 저절로 작품이 만들어지겠네.”
그의 작업실에는 엄청나게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거기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사무 업무를 보는 호아킨 소로야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창문에는 그의 미술 도구들이 높여있었다. 이젤과 물감 붓들이 창문을 등지고 언제든 쓰이기 좋은 상태로 정돈 되어있었다. 시선을 낮춰 그가 작품을 그리며 보았을 높이로 창밖을 쳐다봤다. 그러자 방금 지나온 정원의 모습이 보였다. 푸릇한 나무가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이 그림을 그리던 중 마음을 순식간에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만 같았다.
그의 공간을 다 둘러보고 나서야 냉소적인 생각이 가셨다. 생전에 가족과 해변의 모습을 많이 그렸던 그는 작품이 곧 본인의 삶인 듯했다. 그렇기에 그가 죽고 난 후의 그의 가족들이 집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꾸며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삶이 곧 작품이기에 그가 살던 집에 걸린 작품이 어떤 곳에 전시된 것보다 잘 어울리는 것일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그렸던 스페인의 해변들을 가 볼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