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이 개봉 19일 만에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본 글은 필자가 2016년 8월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에 기고한글을 재편집하여, 발행한 글임을 밝혀 둡니다.
<부산행>이 개봉 19일 만에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과거 B급 장르 영화의 마니아들을 위한 소재로 각인되었던 ‘좀비’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블록버스터적인 즐거움과 사회비판과 풍자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아낸 ‘부산행’에서 스타트업이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돼지의 왕’(1만9,798명), ‘사이비(2만2,366명) 등의 2만 명 남짓한 관객과 소통하며 변방에 머물러 있었지만, 스토리텔러로서 내공을 착실히 쌓아온 연상호 감독과 ‘부산행’의 도전적인 기획을 투자·배급한 투자 배급사 뉴(NEW)의 ‘촉’에 주목하고자 한다.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돼지의 왕>은 그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사업 실패 이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고, 15년 전 중학교 동창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돼지의 왕'은 사회 구성의 처절한 권력 구조와 ‘악’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돼지의 왕>으로 2011년 부산 국제 영화제 및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에 초청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연상호 감독은 2013년 <사이비>라는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를 통해 돌아온다.
<사이비>는 시골 마을 사람들을 꼬드겨 보상금을 타내려는 사이비 장로와 또 다른 ‘악'인 주정뱅이와의 갈등 구도를 통해, “악이 과연 악을 고발할 수 있는가?”, 우리의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괴롭히는 영화이다. 다분히 이질적이고, 냉철한, 의미심장한 시선을 통해 우리의 속내의 나약함을 직시하는 연상호 감독의 연출은 <돼지의 왕>에서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비> 이후,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준비 중이던 연상호 감독은 과거 단편영화로 준비하던 중 실패했던 '서울역 좀비'라는 아이템을 장르 영화로 발전시켜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을 만들게 된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라는 영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향한 통렬한 통찰을 길러내어 온 연상호 감독의 시선은 초고속 열차인 KTX라는 공간적인 배경과 ‘부산행’이라는 탁월한 제목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진화를 꿈꾸게 된다. 속도의 상징인 KTX를 좀비와 투쟁하는 핏빛 밀폐 공간으로 전환하고, ‘빨리빨리’를 모토로 고속성장해 온 한국이 봉착한 난감한 현실을 은유한다. 주인공 일행은 좀비들로부터 안전하다고 알려진 부산을 향하지만, 결국 부산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외길로 달려가 목표를 성취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생존’의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우리 한국 사회의 행(行)의 덧없음을 연상호 감독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블록버스터와 ‘좀비’라는 조합은 한국 관객들에게 여전히 낯설다. 두 편의 독립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가 유일한 필모그래피인 연상호 감독의 기획과 시나리오에 대한 베팅은 영화 투자에 대한 오랜 경험과 철학이 회사의 문화로 존재하는 투자 배급사 NEW이기에 가능했다. NEW는 과거 <7번방의 선물>, <변호인>등의 프로젝트를 투자·배급하며 스토리텔링 및 캐릭터의 힘으로 천만 영화를 만들어 낸 경험이 있다. 최근 자체 제작 콘텐츠 <태양의 후예>로 중국 시장에서 또 한 번의 홈런을 날린 바 있다. <부산행>은 순 제작비 85억 원으로 할리우드의 좀비 영화에 비하면 저예산 영화 축에 속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볼거리를 만들어 낸 제작의 노하우 역시 훌륭하다. 부산행’의 배급사 NEW의 관계자는 “개봉 초기에는 주로 젊은 층이 극장을 많이 찾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호평과 입소문이 나면서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