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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sn Mar 26. 2021

빨간 포션은 게임에만 존재한다

끝없는 누수

희영의 2021년은 시작부터 우울했다. 그녀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스스로도 오르락내리락에 지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하루 이틀 간격도 아니라 시간마다 변하는 기분에, 패배자가 되었다가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적으로 무너졌다가 무기력하게 고여버렸다. 밤이면 찾아오던 우울감은 아침까지 지속되었다. 창에는 밝은 햇빛이 드리우는데 희영은 그 빛 마저 차게 느껴졌다. 긴 겨울이 어서 끝나길 기다렸다. 무언가 자신을 품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희영의 가슴속에 자라난 칼날이 녹아 내리는 해방을 맛보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과 달리, 희영에게 아침은 어젯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정체된 시간 속에 잠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희영의 방은 늘 고요했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울음이 새어 나오면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토해냈다. 누군가 희영의 베개를 만져봤으면 그 축축함에 인상을 찡그릴 것이 분명했다.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울고 싶을 때는 늘 꽁꽁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로 울었다. 늦은 밤에 베개에 머리를 뉘이면 익숙한 축축함이 밀려왔고 곧 다시 불쾌해졌다. 그래도 그 시간은 맘 놓고 울 수 있는 희영의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잠들어 있을 테니까.


깊은 우울에 빠져버린 희영이 유일하게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는 '방 문'이었다. 원래도 집에 있으면 방을 떠나지 않는 희영이지만, 그것은 그저 그녀가 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칠 가족들이 자신의 우울을 알아차릴까 봐, 그 우울함에 대해 물어볼까 봐, 자신이 품은 우울감을 변호해야 할까 봐, 어쩌면 걱정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이 미안해서, 또 자신의 나약함을 숨겨보고자 가장 편리한 길을 선택했다. 스스로를 방에 가두는 방식으로. 방은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공간에서만큼은 새어 나오는 우울을 덜 숨겨도 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동시에 문밖으로까지 흘러가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태양은 떠올랐다 지는 것을 반복했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작은 흐느낌만이 하루의 전부인 희영과는 달리 모든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희영은, 희영만큼은 멈춰 있었다. 희영에게 오래도록 '멈춤'은 곧 휴식(休息)이었다. 사람 옆에는 나무가, 심장 위에는 자기 자신이 있는 모양새처럼 휴식이란 일상의 궤도에서 탈피해 나무에 기댄 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본다는 행위다. 희영은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나무 침대 위에 놓여서', '자신의 감정에 젖어'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휴식인가. 적어도 타인에 눈에 그렇게 비칠 수는 있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희영은 자신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릇 휴식이었다면 옅어졌던 생기가, 고갈되었던 체력이 조금씩 쌓여야 마땅한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도 에너지는 끊임없이 소실되고 있었다. 너무도 무기력했다. 이 고요속에서 희영은 차오르기는 커녕 마지막 남은 생기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소모된다는 것이 납득가지 않았다. 홀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마저 어긋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겪어보지 못한 고갈이다. 희영은 자신을 무엇으로 일으켜 세워야 할지 알지 못했다.


열기가 가득 오른 눈에서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은 뺨을 타고 자꾸 뚝, 뚝. 눈물을 참아보려 숨을 깊게 들이 마신 채 멈추면 작은 코에서 콧물이 뚝, 뚝 떨어졌다. 희영은 자신이 가진 모든 구멍에서 무언가가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러고 나서야 자신의 피부를 떠올렸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의 모공을 가진 피부. 어쩌면 그곳에서도 무언가가 잔뜩 쏟아져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희영은 그 끝없는 누수에 대해서, 자신이 피부를 가지고 있는 한 막을 수 없으리라고 결론지었다.


봄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창밖에는 화사한 꽃잎이 피어났고 이제 햇볕에는 온기가 생겼다. 하지만 희영은 여전히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희영을 채울 수 있을까. 피부에 맞닿는 감각보다,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자꾸 더 크게 느껴진다. 밑 빠진 독이 된 것만 같다. 충만해지고 싶다. 하지만 빨간 포션은 게임에나 존재한다는 것쯤은 희영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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