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 Oct 04. 2019

책과 함께 풍족했던 지난 여름

참새는 방앗간을 들락날락, 나는 도서관을 들락날락 하지요.



참새는 방앗간을 들락날락, 

나는 도서관을 들락날락 하지요.

                              

3학년을 마치고 맞이한 여름 방학. 이번 여름엔 독일어 수업을 듣느라 일주일에 2번 학교를 갔다. 덕분에 학교 도서관에 자주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나는 평소 방학 때- 특히 여름에 책을 몰아서 읽는 편이다. 학기 중에 읽으라면 읽을 수 있겠지만 과제와 시험이 서서히 몰아치면 책을 읽는 것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방학이 되면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가득 빌려오곤 했다. 한적한 동네 카페에서 상쾌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읽는 책들은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이제 나도 졸업이 얼마 남지 않다 보니 - 앞으로 책 읽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구나, 싶은 마음 때문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 방학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읽어보자는 다짐을 하고 갈 때마다 두 손 가득 책을 빌려왔다. 항상 욕심을 내서 빌려왔기에 자칫하면 끊어질 듯한 에코백을 아슬아슬하게 메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우리 학교에 이렇게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니. 책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동네 도서관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학교 도서관에 오는 건데. 도서관 서가를 천천히 훑어보기만 해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이제는 책 찾는 것도 익숙해져서 청구기호를 보고 순식간에 책을 찾는다. 덕분에 그동안의 방학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행복한 여름이었다. 이 글은 나와 여름을 함께했던 책들의 기록이다. 





열심히 빌리고, 빌려온다

종강 날 빌려온 책들. 친구들이랑 놀기로 했으면서 굳이 굳이 4권이나 빌려서 무겁게 들고 다녔다. 그래, 학교 다니느라 책을 많이 고프긴 했지.

                 



늘 마음 같아선 최대 반납 권수인 10권을 가득 채워 빌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에 책을 가득 짊어진 배낭을 들고 다니는 건 도저히 무리였기에, 항상 자제해서 5권 정도만 빌려오곤 했다. 


물론 빌려왔다고 다 읽은 건 절대 아니다. 모두 읽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자꾸 빌려오게 된다. 욕심내서 이것저것 빌려와 보면 유난히 손이 안 가는 책이 항상 있다. 소설, 에세이가 아닌 류의 책은 자주 그랬다. 그동안 늘 소설 종류만 읽어왔던 나이기에 이번 방학은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노력했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책상 위엔 더 이상 빈자리가 없는데도


            

이 책들은 삼촌이 회사 포인트로 내게 사주신 책 다섯 권. 책 사주신다는 얘기가 그렇게나 좋아서 무슨 소중한 보물 고르듯 심사숙고해서 책을 골랐다. 정말 웃긴 건 지금까지 저기서 읽은 책은 <오예! 스페셜티 커피!> 단 한 권이다. 집에 있는 책은 안 읽고 맨날 도서관에서 주구장창 빌려오는 게 참 웃기긴 하다. 



이건 국제 도서전에서 사 온 매거진, 전공 심화 공부 좀 해보겠다고 빌려온 마르크스 <자본론>과 사회학 책. 슬프게도 잘 읽히지 않아 2번이나 빌려왔는데도 완독 하지 못했다. 서점 얘기하는 책들만 쏙 읽고 반납했다. 



        

이렇게 쌓아두고 골라가면서 읽었다. 책을 여러 권 빌려오면 좋은 점이 한 책이 질릴 때마다 잠깐 멈추고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아이스크림 골라 먹듯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번갈아 읽다 보면 어느새 여러 권을 다 읽은 상태가 된다. 물론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들도 있었다. 





베를린 '덕후'가 되어버리다 



                

그렇다. 나는 이제 자타 공인 베를린 덕후가 되어버렸다. 이미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베를린 가서 한 달 살기 할 거야', 하고 동네방네 외치고 다녔으니까. 도서관에서 <베를린>을 검색하고 재밌어 보이는 책은 빌려와서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무조건 다시 가야겠다, 돈 열심히 모아야겠다, 독일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독립서점에서 6월에 구매했던 <베를리너>도 드디어 다 읽었다! 전시기획이나 큐레이터 일을 하면서 3년 동안 베를린에 살았던 작가가 너무 부러워서, 요즘은 나도 어떻게 하면 베를린에서 일할 수 있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는 중이다. 




내가 도서관을 여행하는 법




요즘 도시, 도시개발,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것에 관심이 생겨서 그런 책을 많이 빌려왔지만 정작 잘 읽지는 못했다. 자꾸만 여행 에세이, 수필 같은 거에 손이 갔다. 문화예술, 예술사회학 같은 책도 몇 권쯤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왜 이리 잘 읽히지 않는 걸까. 올해 내로 다시 도전이다. 


책, 독립서점, 책방 등 이런 거에 정말 꽂혀서 한동안은 이런 책들만 읽었다. 덕분에 다음 여행 때 방문해야 할 서점 리스트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재밌어 보이는 워크룸 프레스의 책,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독일어 책.

      

서가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아무튼> 시리즈. 처음 보는 시리즈였는데, 이거 정말 너무 심각하게 재밌다. 작가들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 쓴 글인데, 애정과 관심이 듬뿍 어린 그 글을 읽고 있자면 나까지 덩달아 그것이 좋아지게 된다. 분량도 적당해서 술술 읽을 수 있다. <망원동>, <잡지>, <게스트하우스> 이렇게 읽었는데 <망원동>이 가장 좋았다. 가족여행으로 떠난 속초에서 들린 동아서점에서 동생은 <아무튼, 술>을 샀다! 





             

이런 걸 읽었지 



읽었던 책 중 몇 개만 추려보았다.


독후감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 읽었던 <경애의 마음>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꾸역꾸역 읽었고 독후감 쓸 때도 너무 힘들었다), 뉴욕 여행 가고 싶어서 읽은 <나는 매일 뉴욕 간다>, 이번 방학 좋았던 책 중 하나인 <아무튼, 망원동>.



'방구석 1열'에 출연하신 변영주 감독님의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스무 살 때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인데 다시 도서관에서 마주쳐서 빌려오게 된 <PENSYLVANIA> (잔잔한 일상을 얘기하는 에세이집인데 의외로 여운이 길고 오래 남았다. 꿈속에서 에세이 속 등장인물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도발적인 제목에 빌려왔지만 예상외로 재밌고 유익했던 <헬조선 인 앤 아웃>.



좋아하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 (책 표지 일러스트가 내가 좋아하는 제로퍼제로 스튜디오의 작품이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여름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완벽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디자인에 내용까지 참신했던 <스몰 토크: 뉴욕에서의 대화>. 현대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 그리고 읽는 내내 너무 재밌었던 <도서관 여행하는 법>. 정말 '도서관'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읽고 나서는 나조차도 도서관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다. 





세상은 넓고 좋은 책은 많다



빌려서 읽고 너무 좋아서 구매한 유유 출판사의 <쓰기의 말들>, 코엑스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잠깐 읽었던 잡지
친구와 함께 방문했던 현대카드 디자인, 트래블 라이브러리에서 발견한 책들. 어쩜 이렇게 참신하고 재밌는 책들이 많은지.
동아서점에서 발견한 데이비드 보위 책, 고래 서점에서 발견한 책들


위 3권은 여행을 떠난 속초에서 들린 <동아서점>, 강릉 <고래 서점>에서 발견한 책들이다. 역시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좋은 책은 너무도 많다. 서점 구경하는 건 왜 이렇게 재밌는 걸까. 정말 한번 구경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덕분에 내 지갑은 너무도 쉽게 열리곤 하지만. 





                                 

그렇게 이번 방학 총 35권의 책을 읽었다. 방학 중 최대 기록이다. 이번 방학 열심히 놀며 돌아다녔는데도 이렇게 많이 읽은 게 신기하다. 몇 권을 읽었는지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슨 책을 언제 읽었는지 기록해두고 싶어서 매년 이렇게 다이어리 뒤에 적어두곤 한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은 모두 읽은 것만 같아 행복했던 이번 방학이었다.


책 읽는 건 왜 이렇게 재밌고 즐거울까. 몇 년 전만 해도 책 읽는 습관 들이느라 꽤나 고생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난독증도 사라졌고 어떤 책이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들이 더없이 늘어난다. 읽고 싶은 것 위주로 책을 편식하는 것 같긴 하지만, 학술적인 책도 익숙해지려 노력해봐야지. 책으로 너무나 풍족했던 이번 방학, 덕분에 행복했던 여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우리는 모두 데미안이 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