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7일 목요일.
요즘은 기분이 묘하다.
한국에서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제였나 어제였나.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카톡을 했다. 중, 고등학교 친구들부터 과 동기들까지 ...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 머나먼 타지에서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지금 이 순간들도. 나의 스물두 살 여름도 곧 끝이 나버릴 거라는 게, 너무 묘하고 슬프고 그렇기만 해서.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정말이지 좁다. 오늘 진실의 입이 있는 로마의 성당에서 고등학교 친구 H를 만났다. 어떻게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한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친구를 만날 줄이야. 상상조차 못했다.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비몽사몽한 상태였는데, 잠이 다 깰 정도였다.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얘기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남은 여행 잘 마치고 돌아가라며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들에게 벽을 쌓으며 지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들을 붙여가면서. 내 마음대로 기준을 만들고 저 사람은 나와 잘 맞지 않을 거야, 단정 지으며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편하게 느끼는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며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그게 더 편했으니까. 다른 이들과 친해질 기회가 있어도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모두 막아버리곤 했다.
오늘 만났던 친구 H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2학년 내내 같은 반, 같은 무리에서 어울리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친하지 못했다. 그건 전부 내 탓이다. 대화를 오랫동안 나눠보지도, 그 친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내 맘대로 단정하고 선을 그었다. 나와 잘 맞지 않을 거야, 나와 관심사가 다르니까 쉽게 친해질 수 없을 거야 하면서.
참으로 어렸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내가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갔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을 내 발로 쳐낸 셈이다. 나만의 좁은 기준으로 재단하면서. H는 특유의 웃음과 밝은 에너지로 우리를 늘 즐겁게 만들어 주던 친구다. 모든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렸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아이다.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솔직하지 못하던 나와는 달랐다.
내가 가지지 못한 점들을 가지고 있던 친구. 어쩌면 속으로는 부러운 마음에 그 친구와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부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기를,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내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