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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Dec 01. 2019

60kg, 내가 들고 온 걱정의 무게 #1

그렇게 겁 많은 내가, 결국 독일에 왔다




2018년 3월 25일


독일에 도착했다. 이 글은 숙소 침대에 누워서 쓰고 있다. 독일에서 쓰는 일기라니, 참 낯설고 생경하다. 내가 정말 독일에 왔다니. 거짓말 같지만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발했을 때도 25일이었는데, 여기도 아직 25일이다. 한국은 지금 깜깜한 새벽이겠지.


사실은 짐을 너무 무겁게 싸온 바람에 정말이지 죽을 뻔했다. 고작 6개월 살러 온 거면서 어떻게 짐을 60kg이나 들고 올 수가 있어. 28인치, 24인치 캐리어를 두 손에 잔뜩 끌고 15kg의 보조 배낭과 어깨엔 10kg의 배낭을 메고 도로 위를 헤맸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치안이 하도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와서 그런지 나는 바짝 긴장했고, 울퉁불퉁한 돌길 때문에 캐리어 바퀴는 자꾸 헛돌기만 했다.


원래 같으면 3분이면 도착했을 숙소를 뱅뱅 돌아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같은 대학교로 파견된 H언니가 곁에 없었다면 나는 길바닥에 주저 않아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내부.


아까 비행기를 타기 직전, 엄마 아빠와 동생과 헤어지며 그만 울고 말았다. 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자 나도 덩달아 슬퍼져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 품이 편한 아이인 걸까? 이제껏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기는 하다. 독일에서 보낼 시간들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저 두렵고, 막막하고, 걱정으로 가득했다. 겁까지 많은 내가 어떻게 이리도 먼 나라로 오게 되었을까. 사실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도 -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며 계속 불안해했다. 근데 정말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내가 유럽을 정말 좋아하긴 하나 봐. 좋아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겨버렸으니까.


지난 2년 동안은 정말 유럽만 바라보고 살긴 했었다. 대학교 2년 내내 나는 정말 열심히도 살았다.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모두 받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다 제쳐두고 이 악물고 공부했다. 공부밖에 모르는 애라고 놀려대도 어쩔 수 없었다. 난 유럽에 가야만 했으니까. 전공 공부와 과제에 늘 치여 살았고, 영어공부도 해서 시험도 쳤고 문예 공모전에 글도 제출했다. 알바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심지어 주 5일 연습이 있는 중앙 밴드 동아리 활동까지 함께 병행했다. 그렇게 교환학생 자금을 모았다. 내가 살면서 이토록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돌덩이 같은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겨우 한숨을 돌린다. 두툼한 잠바를 벗으니 옷이 흠뻑 젖어있다. 대체 얼마나 긴장을 한 거야. 낯선 이곳에서는 어느 하나 쉬운 게 없구나. 짐을 풀으려고 캐리어를 열다가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물개 인형과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 마음에 안정이 된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역시 데려오길 잘했어.




귓가에는 독일어가 들리고, 동양인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이곳. 근데 왜일까. 그들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외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아까 언니랑 해가 지기 전에 후딱 저녁을 사러 나갔다 왔었는데,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얼른 그들과 빨리 대화해보고 싶었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를 가진 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너무 동양인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아, 정말 독일에 온 게 맞는 것 같다. 왜냐면 지금 내 숙소 창문만 하더라도 유독 길쭉하고 네모난 게 딱 유럽스럽거든.


창문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캄캄한 밤하늘과 높은 빌딩들이 보인다. 아까  책상에 앉아 중앙역에서   닭고기 샌드위치를 먹었다. 자꾸만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들어 -  베이커의 노래를 틀어놓고선 밖을 바라보며 딱딱한 빵을 우물거렸다.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같지만  막상 그렇지는 네.




그래도 오늘은 비도 안 왔고, 너무 춥지도 않았다. 숙소도 적당한 크기에 깔끔해서 참 다행이다. 다만 방 안에 슬리퍼가 없어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야 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까는 세면대에서 잠깐 손을 씻었는데 물이 굉장히 꺼끌꺼끌했다. 피부가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석회수인가? 한국의 물은 되게 보드라웠는데. 아, 벌써부터 한국이 그리워지면 안 되는데 말이다.  


내일은 아침 7시 반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쉽지 않은 하루였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더 긴장했던 거겠지. 내일 이 많은 짐을 잘 들고 기차도 잘 타고, 무사히 오스나부르크에 도착하기를. 짐과의 전쟁을 아침부터 치를 생각을 하니 아찔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기대되기도 한다. 긱사 룸메들도, 학교에서 만날 친구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모든 것들이 그저 흐릿하고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독일에서 그간 내가 지니고 있던 고정관념과 생각은 완전히 부서지겠구나. 오늘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겠구나.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걸 동경한다고 했다. 그동안 품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동경이 이제는 부서질 차례겠지. 일단은 부딪혀 보기로 했다. 스물둘, 앞으로 펼쳐질 독일에서의 삶. 나에게 작은 응원을 건네며, Tschüss!






# 2018.03.25 ~ 2018.09.14


독일과 유럽에서 6개월간 기록했던 글을 

이제 세상 밖으로 꺼내 보려고 합니다.
저의 독일 교환학생 & 유럽 여행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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