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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07. 2020

바흐가 잠든 도시에서 만난 하프시코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7월의 어느 날



라이프치히에 있는 바흐 박물관.


라이프치히에 있는 바흐 박물관 안에는 하프시코드가 있었다. 언뜻 보면 피아노와 비슷해 보이지만 건반 수가 훨씬 적고, 더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악기. 하프시코드 앞엔 'Feel free to play'라는 문구가 붙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모두를 위해 마련된 악기인 셈이다. 살다 살다 하프시코드를 직접 쳐볼 기회가 오다니! 독일은 역시 좋은 곳이야, 생각하며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예쁜 노란빛 건물의 바흐 박물관. 푹 빠져 구경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고 눈앞에 펼쳐진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친절하게도 하프시코드 위엔 바흐의 인벤션 악보가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연습했던 그 곡을 조심스레 연주해 봤다. 하지만 하프시코드의 '도' 건반에선 한음 낮은 '시' 소리가 났기에, 악보를 보고 열심히 연주해 봐도 누르는 건반과 들리는 음이 다르다 보니 너무도 헷갈려서 손이 자꾸만 꼬였다.



이 곡이 어려워서 그런가, 하고 페이지를 넘겨 다른 곡을 연주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연주를 마쳐야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귀한 하프시코드를 쳐볼 수 있다는 게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반면 내 뒤에 서 계시던 한 독일인 아주머니는 하프시코드 앞에 앉자마자 아주 능숙한 솜씨로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셨다. 남편분은 그 옆에 서서 같이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와, 역시 클래식의 본 고장에선 지나가는 관람객도 저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건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뒤에 서서 감상했다.



실제로 들어본 하프시코드 소리는 장난감같이 아기자기한 소리가 났다. 건반도 무겁다기보단 가벼웠고, 낯선 소리인데도 자꾸 귀 기울여 듣게 되는 오묘한 매력을 지녔다. 옆에 쓰인 설명을 읽어보니 - 하프시코드는 크기도 아담하고 소리도 작아서 가정에서 피아노 연습용으로 자주 사용하던 악기라고 한다. 아, 아무래도 오늘 집에 돌아가자마자 바흐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



성 토마스 교회.
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



바흐 박물관 바로 맞은편엔 - 과거 바흐가 27년간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했던 '성 토마스 교회'가 있다. 이곳은 바흐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흐는 이곳에서 수많은 곡을 작곡했고 연주하며 지휘했고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쇼팽 다음으로 좋아하는, 아니 쇼팽만큼이나 좋아하는 작곡가인 바흐. 박물관에 오기 전 교회 안에 들어가 천천히 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 바흐가 잠들어 있다



교회는 차분하고 단정한 그의 선율과 닮아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곧게 뻗어있는 저 기둥, 정감 있는 노란빛 벽지, 창밖으로 비쳐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 하나님은 바흐를 엄청나게 사랑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름다운 곡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 그가 흘렸을 눈물과 담담한 고백들, 그리고 간절한 기도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만 아득해졌다. 이곳에 잠든 바흐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교회를 가지 않은지 어연 몇 년이 흘렀음에도, 이곳에선 나도 모르게 신을 찾았다. 그리곤 방명록 종이에 글씨를 꾹꾹 눌러쓰고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은 무엇인가 볼 수 있나요?”   “네, 아름다운 것들이 보여요.”
2018년 7월, 여름





라이프치히. 고작 반나절 머물렀을 뿐인데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거리 풍경이 자꾸 생각나던

아름다운 도시였다






https://youtu.be/s2PtVGRgkU8


영화 <셰임>에 삽입되기도 했던 바흐의 아리아.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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