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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19. 2020

봄과 여름 사이, 오스나부르크

나의 독일 교환학생 일기장 두번 째





2018년 5월 13일


음악은 어쩌면 그 나라의 분위기나 느낌을 어느 매체보다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쏜애플의 노래는 치열한 서울에서의 삶을 떠오르게 하고, 기타 한대와 절절한 목소리로 곡을 부르는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는 거칠지만 꾸밈없이 담백한 아일랜드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아있다






2018년 5월 16일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든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 좋다. 그게 말이 되었던 편지가 되었든 노래의 가사가 되었든 그 무엇이든 간에






2018년 5월 21일


우리 학교엔 가을방학의 보컬 계피를 닮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을방학의 노래, 때론 브로콜리 너마저의 초창기 노래를 꺼내 들을 때마다 이 친구가 생각났다. 마치 그 친구가 이 노래를 불렀을 것만 같고. 주변 사람들이 그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점을 말하거나 실제로 그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에도 나는 그저 눈감아주었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단지 그 아이가 계피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2018년 5월 22일


햇빛이 좋다 햇볕이 따가워 눈을 찡그리고 있는 것도 검디검은 머리가 뜨끈해져 오는 것도 온몸이 뜨끈해져 오는 것도 머리칼이 햇빛에 비쳐 갈색빛이 되더라도 괜찮다 다 까맣게 타버려도 좋아 햇볕에 쬐일 때면 새삼 내가 살아있음이 유독 생경히 실감 나곤 했다






2018년 5월 끝자락


어떤 세계 속에 푹 빠져있다보면 때론 그 세상이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이 아닌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담담하게 그 세계 속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그 세계는 꽤나 좁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게 바로 헤세가 말했던 자기만의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온 순간일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2018년 5월 28일


아까는 천둥이 쳤고 잠시 누워있던 동안 비가 내린 것 같았다 비 냄새를 창문께에서 맡았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29일


누군가의 젊은 날을 그토록 좋아했었다 결코 영원하지 않을, 찰나처럼 지나가버리는 젊음의 단상 같은 것을 그리도 동경했다





2018년 6월 18일


지난여름, 나는 꽤나 성장했던 것 같다. 작년 여름은 유일하게 행복했던 여름이다. 근데 뒤돌아보니 그 행복함과 만족감 뒤엔 책이라는 존재가 숨어있었다.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읽던 문장 같은 것들. 고요한 문장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주변 많은 것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음에도 내가 행복했던 이유는 - 아마 그 문장 사이사이에서 삶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살아 숨 쉬게 했고 깨어있게 했다. 독일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남은 늦여름 그리고 가을, 돌아올 겨울날에 책을 품 안에 꼭 껴안고 살아갈 것이다






2018년 6월 30일


여름은 처절한 맛이 있다 온몸을 휘감는 습도 그리고 따가운 태양볕 그 아래에서 우리의 삶은 좀 더 처연하고 절박하고





2018년 7월 6일


왠지 사람 손 모양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는 느낌이다 각양각색의 손톱 모양과 색 손의 길이 피부의 색 뭐 그런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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