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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l 11. 2021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제주 Day 5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Today's BGM

Archie James Cavanaugh

- Light Unto The World

https://youtu.be/27JrdV_9HC4



나를 단숨에 제주의 가을로 데려다 놓는 곡.

책방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이번 제주 여행의 테마곡이 되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던 날. '책방 무사'는 오늘의 첫 목적지다.



성산에서 머무는 숙소엔 슬프게도 책상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침대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다.


여행에 왔지만 에디터로 참여하는 독립잡지 기사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기사를 고치고 고쳤다. 놀러 와서 기분이 붕 떠버린 건지 글이 영 제멋대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먹은 점심과 저녁. 정말이지 제주엔 맛있는 음식이 참 많다



제주엔 맛있는 음식이 많아 배가 고플 틈이 없다. 오늘도 맛있는 걸 많이 먹었다. 온몸이 시릴 만큼 차가운 물회는 신선한 소라와 전복, 멍게로 가득했고 함께 시킨 전복죽도 어찌나 고소했는지 모른다.


저녁에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들이 추천해준 흑돼지 돈가스 집을 갔는데, 이제껏 먹은 것 중 손꼽을 만큼 맛있어서 순식간에 접시를 비웠다.

 





점심을 먹고 방문한 빛의 벙커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침 고흐와 고갱 전시를 하고 있었기에 참 운이 좋았지.


영화관 같이 깜깜한 공간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음악과 찬란한 영상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그들의 작품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휘황찬란한 모습을 뽐냈고 황홀한 클래식 음악에 모두가 압도됐다. 전시를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엄마도 감탄을 멈추지 못하셨다.





나와 엄마는 고흐를 참 좋아한다. 독일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엄마와 유럽을 여행할 때도 고흐의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으니까.


평생을 외로움과 맞서 싸우며 불행한 삶을 보냈지만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지녔던 사람. 그의 전기 영화 <영원의 문에서>를 보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영화관을 나오던 때가 생각난다. 슬픈 그의 생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 감상하다 보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창문과 돌바닥
'제주도에 두 개의 공항은 필요 없어'



오늘의 첫 목적지였던 '책방 무사'. 싱어송라이터 요조가 운영하는 책방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꼭 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다.


늦잠을 자고 여유로운 아침 방문한 서점은 내가 첫 손님인 듯했다. 책방은 일본 라디오를 틀어둔 듯 진행자의 목소리와 음악이 번갈아 흘러나왔고, 나오는 곡이 다 좋아서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됐다.


서가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이번엔 무슨 책을 사 갈까 고민하던 중, 작가 이슬아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알게 된 유진목 시인의 시집을 골랐다. 진초록색 표지의 책 제목은 <식물원>. 결제를 마치곤 표지 앞장을 펼쳐 책방 도장도 야무지게 찍었다.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았다. 주로 에세이, 문학, 사진집 위주로 서가가 구성되어 있었다



책방에 머물며 계속 생각했다. 나중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나만의 독립서점을 차리는 건 꽤 오래전부터 꿈꿔온 일이다.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글을 쓰는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모두 낭만에 불과한 생각인 걸까.


요즘은 절반 가량 남은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후회가 없을지 고민이다. 서가를 둘러보던 중 얼마 전 채용공고가 났던 매거진을 마주했을 땐 기분이 묘했다.


물론 지금 멋진 친구들과 함께 독립 매거진을 만들고 있지만, 이게 내 직업이 될 순 없을까? 좋아하는 일은 돈이 될 순 없는 걸까.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딱 한 개만 고를 수 있나. 이 끝없는 고민은 언제쯤 끝이 날지 갑갑하기만 하다.  



책방 돌담 너머엔 귤나무가 많았다



잠들기 전, 책방에서 사 온 책을 펼치고

가만히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어 본다 


엿 푸른 풀잎 향이 나는 것 같다






글에 나온 공간들

: Good Places to Visit


책방 무사

서귀포시 성산읍 수시로 10번길 3

막둥이 해녀 복순이네

서귀포시 성산읍 서성일로 1129

빛의 벙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2039-22

범식당

서귀포시 성산읍 한도로 66 2층







불과 6개월 전에 썼던 글인데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게

새삼 낯설고 신기하네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는 요즘이에요.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라며

곧 6번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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