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니콜스의 영화, <졸업 The Graduate> (1967)
얼마 전,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무서우리만큼 쏜살같이 흘러가는 요즘.
원래라면 작년 여름에 졸업해야 했지만 그때의 난 갈피도 잡지 못한 채 한없이 방황했다.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에 잠식되어 있었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었다.
그렇게 유예를 택했다. 나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꿈과 현실을 끊임없이 저울질했고 낯선 언어들을 듣고 입으로 중얼거렸다.
가을에는 제주로 훌쩍 떠났다. 3주간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후엔 서울은 이미 겨울이었다. 우울한 연말을 꾸역꾸역 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새해를 맞이했다.
유독 눈이 펑펑 쏟아지던 이번 겨울. 영원할 것 같던 추위. 새하얀 창문 밖 풍경과 눈이 밟히는 뽀드득 소리도 금세 과거가 되고 졸업식 날짜는 어느덧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또다시 나는 지난여름처럼 망설였다. 한 번만 더 졸업을 미룰까? 아직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에게 좀 더 시간을 줄까? 아니, 어쩌면 이건 도피일지도 몰라.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잘라낼 겨를도 없이 졸업식 날을 맞이했다. 그렇게 졸업생이 됐다.
사진관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나니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뿌듯하고 후련하면서도 이유 모를 두려움이 찾아왔다. 영영 학생일 줄만 알았는데, 반짝이던 시절이 다 지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미성년에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멋진 어른으로 변신하지 않았던 것처럼, 졸업을 한다고 모든 불안과 고민이 사라지진 않았다. 안전벨트가 풀린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또다시 방황의 기로 앞에 놓였다.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 <졸업>. (원제의 정확한 뜻은 '졸업생'이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와 꼭 닮아있을 것 같아 영화를 틀었다.
수석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벤자민. 어엿한 졸업생이지만 여전히 앳된 아이처럼 보인다.
50년 전에도 세상은 여전했다. 어른들은 묻는다. 졸업 축하해! 그래서 앞으로 뭐 할 계획이니? 대학원은 가기로 했니?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기 위해 벤자민은 일탈을 택한다. 부모님의 친구인 로빈슨 부인과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한다. 해가 쨍쨍한 대낮엔 그저 수영장 물 위에 누워 생각에 잠기거나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며 어려움과 시련을 견뎌낸다. 기어코 사랑을 쟁취한 벤자민은 일레인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았던 건 두 사람의 마지막 표정이었다. 웃음기 가득했던 얼굴은 금세 싸늘해지고 덜컹거리는 버스처럼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린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다.
그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아, 우리는 평생 방황해야 할 운명인 걸까. 김사월의 노래가 머릿속을 스쳤다.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뿐이라는 걸'
영원한 졸업이란 없다. 나는 그저 '졸업생'이 되었을 뿐. 이제 좀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인생은 멈출 생각도 않고 끝없이 흘러간다. 나는 다시 끝없는 불안의 파도에 몸을 내던져야 하겠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달려야 하겠지.
불안이 젊음의 대가라면, 오직 방황만이 젊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다. 한없이 무너지고 넘어지더라도 이로써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만 있다면 더는 주저하지 않을 테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는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Simon & Garfunkel - Sound of Silence
(영화 '졸업'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