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불특정 개인에게 닥치는 예고 없는 고통’은 늘 물음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종교인이기 때문일까? 나는 안타까운 사고를 다룬 기사에서 ‘신은 없다’는 댓글이 추천 순위 맨 위에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마치 이 생각에 동조하듯이, 아무리 생각해도 전지·전능·전선한 신은 이렇게 한 사람을 비참하게 죽게 놔둘 리 없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때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었다.
바로 그 글 중 하나가 故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한 말씀만 하소서>다. 작가는 이렇게 소개한다. 이 글은 ‘소설도 수필도 아닌 일기’라고. 외아들을 잃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써내려간, 하루하루의 글이라고. 그만큼 작가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이 책에 담아냈다.
세월이 약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격렬한 반감이 솟구칠 때도 없다. 그 애는 25년 5개월 동안이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곤궁했을 때 받은 얼마 안 되는 금전적인 도움이나 우울한 날 말동무해 준 친구의 우정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는 게 사람의 도리이거늘 어떻게 25년 5개월 동안이나 나를 그렇게 기쁘게 해 준 아들을 잊는 게 수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p.19
작가는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살아생전 아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도, 자신이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죄목도 떠올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애쓸수록 돌아오는 것은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 남겨진 고통 뿐. 하루는 ‘외아들 대신 딸 중 하나를 잃었다면’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하다 두려움에 떨며 용서를 비는 기도를 바치기도 한다.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 고로 그분을 *덧들이고(남을 건드려서 언짢게 하다) 싶지 않았다. p.48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섭식과 배설마저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작가는 자신을 찾아 온 이해인 수녀님으로부터 분도수녀원에 잠시 머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내 떠나기로 결심하는 작가. 참척의 쓰라림에 잔뜩 움츠러져 있는 작가에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녀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엄숙함보다 생생한 생명력으로 가득찬 그 풍경 속에서 작가는 점차 팽팽한 신경줄을 느슨하게 만들며 하루하루 적응해 나간다.
…여기가 전혀 딴 세상처럼 보이는 것은 여기에는 내가 여직껏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사랑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끼리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한다는 박애 정신을 믿지 않았다. 그건 인류의 이상일 뿐 실행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실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꼬운 위선자도 없었다. 그러나 이 세상엔 가족에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소외된 사람도 수없이 많은 걸 어찌하랴. 박애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으므로 가족을 떠나 보다 넓은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을 따로 부르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p.110-111
수녀원에서 또다른 사랑의 형태를 보게 된 작가는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탁자 위에 놓인 백자 필통이 눈에 띄었다. 거기 쓰인 ‘밥이 되어라’라는 글귀 때문이었다. …나는 분도수녀원에서 맡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냄새를 떠올렸고, 어쩌면 주님이 그때 나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몇 날 며칠을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찾아 대들고 몸부림쳤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 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p.165
섭식과 배설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삶의 루틴을 회복하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작가. 고통 속에서 조금이나마 시선을 돌리고 나니, 밥이 되어 오신 ‘절대자’ 주님이 보인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수녀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글 짓는 작가로써 돌아오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의 앞머리에 이렇게 썼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봅니다만 살긴 살았겠죠.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모진 거니까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듯합니다. p.12
…이 못 박힌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은 건 최근의 일입니다. ‘오냐 실컷 욕하고 원망하고 죽이고 또 죽이려무나, 네가 그럴 수 있으라고 나 여기 있지 않으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분의 표정은 생생하게 슬프고 너그러워 보였습니다. p.13
자신이 믿는 ‘절대자’ 하느님에게 갖은 원망을 쏟아내던 작가는 그럼에도 절대자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본다. 바로 이런 것이 작가의 능력일까? 다르게 보는 것. ‘시선의 전환’ 속에서 작가는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표정 없는 듯 보였던 십자고상에서 그리스도의 슬프고 너그러운 표정을 ‘본다’. 고통 속에서 ‘밥이 되어 오신’ 주님을 보았던 것처럼.
이 글은 아들의 2주기에 써졌지만, 작가의 고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돌린 시선에는 ‘꼭꼭 숨겨놓았던 채송화 씨보다도 작은 신앙심’이 있었다. 작가는 그 작은 신앙심을 ‘누군가에게 떠다밀린 것처럼 마지못해긴 하지만 마침내 어디론가 던지며’,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땅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썼다. 고통이 작은 씨앗으로 변모한 것이다. 시선의 전환 속에 이루어진 이 작은 행동은 분명 작가의 자아 깊숙이 뿌리를 박고 싹을 틔워냈다. 그 싹은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루었을 것이다. 작가의 수많은 아름다운 글이 되어.
이 책의 말미에는 이해인 수녀님과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다. 아름다운 편지글이니, 직접 작가의 필체로 쓰인 글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곳에는 싣지 않겠다. 어쩌면 이 글은 작가가 그 고통 속에서 가장 먼저 길러 낸 작은 나무가 아닐까. 상상력이 아닌 작가가 직접 겪어낸 고통으로 길러냈기에, 그래서 더 아름답고 슬픈 나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 내는 자기회복의 과정이, 우리를 이 지상에서 살게 하리라.
*키워드
#고통과절대자 #자기회복의실마리 #시선의전환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삶이 다시 피어나는지 궁금한 사람
죽음을 겪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할 지 모르겠는 사람
*한줄평
고통은 고통이지만 어딘가에 심겨질 작은 씨앗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