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보다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에서 불행의 이면을 본다. 그리고 불행에서도 행복의 이면을 본다. 이러한 우리 인생의 ‘모순’을 다룬 소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다. 작가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속에서 골몰한다.
『모순』의 창작노트 곳곳에는 이런 종류의 복합어들이 아주 많이 발견된다. 흘려 쓴 글씨로 붙박여 있는 그 편린들은 아마도 주제에 관한 내 마음의 무늬일 터였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식의 서로 상반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의 개념어에 필연적으로 잇따르는 반대어, 거기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작가노트> 중에서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렇기에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설정은 큰 몰입감을 준다. 한날한시에 태어났지만, 결혼을 통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엄마와 이모. 술만 먹으면 세간살이를 때려부수는 남편을 만나 다소 냉소적인 딸(진진), 문제아로 통하는 아들(진모)과 함께 살면서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며 불행을 과장하는 엄마와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온 이모부를 만나 소설과 음악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모. 진진은 양말장사를 하는 엄마가 부끄러워 이모를 엄마라고 속인 적도 있다. 누가 보기에도 이모의 삶은 행복해보이고, 엄마의 삶은 불행해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삶의 ‘모순’을 말한다.
나는 걸으면서도 생각 했고 일을 하면서도 생각했고 자면서도 생각했었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고, 등산에 빠져 주말마다 산에 가는 행복으로 나날을 보내는 옆자리 직원을 보면서도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되뇌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대학 동기를 보면서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스물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나,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 궁핍한 생활의 아주 작은 개선만을 위해 거리에서 분주히 푼돈을 버는 것으로 빛나는 젊음을 다 보내고 있는 나. p.17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나(진진)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며 결혼이라는 모순을 상상하는 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사촌 주리의 양감 없는 인생에 안도히는 나, 한심한 짓을 골라 하는 동생임에도 그애를 걱정하는 나, 엄마의 분주함에 조용히 감탄하는 나의 모습을 그린다.
사실 결말 스포를 제외하자면 엄마가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큰 불행 앞에서 납작 엎드려 무릎 꿇더라도 결코 삶의 끈을 놓아버리지는 않는 엄마. 소설책 대신 생계에 도움이 되는 책들만을 읽을 기회가 주어진 엄마.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그 모든 일을 겪고도 늘 힘이 넘치는 엄마.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노트를 펼쳤다. 그 문장들을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p.21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빛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27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가진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나 또한 내 어머니처럼 이종사촌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저히 대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와 달랐던 점은 이종사촌들에 대한 질투심을 감쪽같이 잘 숨기며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숨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질질 흘렸다면, 만약 그랬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완벽한 실패작이었을 것이다. p.142
내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문장들이 불편했지만 그만큼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가면 뒤에 감추어진 나의 내면.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 가운데에서 나는 내 속을 꿰뚫렸고 한편으로는 막아냈다. 인간은 때로는 이 모순에 전율한다. 마치 미로 속에서 지도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소설 속에서 진진이 전율을 느끼는 장면들을 마주해보는 것도 하나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p.188
*키워드
#창같기도방패같기도 #선택의기로에놓인삶 #긁개같은소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삶의 모순에 골몰하는 사람
인간의 이중성을 목도한 사람
메시지와 재미를 모두 잡은 책을 읽고 싶은 사람
*한줄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