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니스에서 배운 철칙

by 완다


내 기억 속에는 새벽 어스름 무렵에 니스에 도착한 것 같았는데, 사진의 세부 정보를 통해 보니 오전 8시 무렵에 도착했었다. 이런 기억의 착오는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분명 첫날부터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이제 보니 지금도 구글 메일로 광고를 보내오는 아파텔에서 묵었다. 사진첩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사진 속의 나는 밝아졌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얼굴. 그 철없고 맑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니스와의 첫만남


니스에 막 도착했을 때 놀란 것은 겨울인데도 남쪽인 만큼 사방이 햇빛으로 인해 눈부시게 밝았고, 우리에게는 보기 드문 제주도나 동남아시아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야자수가 해변 따라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환하고 화려하지만 유명한 휴양지답게 약간은 번잡한 느낌.

내가 상상했던 곳이 아니었다.


아이는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고 방탄소년단 팬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아이는 호텔방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혼자 밖으로 나왔다. 둘이서만 캐나다에서 살 때 아이만 집에 두고 외출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방임 범죄라, 착각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했다. 다른 여행에서도 꼭 붙어 다녀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아깝고 얼른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여행 초반의 실수를 통해 정말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긴 했다만.


마세나 광장 위로는 트램이 다니기도 해서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나중엔 매우 흔한 풍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니스의 구시가지를 거닐고 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남아있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움직임에 따라 골목골목 황금빛 조명이 흔들리고 있었고, 맛있는 음식, 귀엽고 화려한 장식품, 그리고 꽃집에서 풍겨 나온 향기 등 아름다운 풍취들로 넘실대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어디까지나 나그네, 여행객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혼자 그 안으로 스며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특히 꽃시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였다.


경계심이 많은 나도 일단 마음을 놓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자 길을 잃은 걸로 알고 도움을 주시려는 것 같아, 기꺼이 괜찮다는 답을 했다.

그런데 말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프랑스 할아버지의 플러팅이라니.


이 일이 2018년에 있었던 일이었다는 것을 다시 감안하고 보셨으면 좋겠다. BTS의 세계적인 인기몰이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젊은 층, 그것도 열성 팬들에 한정된 때였다.


캐나다에서 살 때도 느꼈지만, 서양 할아버지들은 대상이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생에서 제2의 자신감이 갑자기 어디서 솟구치는 것만 같다. 한번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재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여행객이 아닌 것 같으면, 무조건 이곳에 시민권을 노리고 왔다고 생각한다. 카페나 식당, 혹은 지하철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뜬금없이 자신은 퇴역 군인으로 연금을 많이 받는다고 말을 거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불쾌하지만, 나이 드신 분이라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일 모나코에 가야 해서 일찍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오해하지 말라고 그저 시간이 많아서 그러니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순간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교통비도 줄이고 돌아다니느라 고생도 덜하지 않겠는가.

또 거동이 느린 할아버지니 위험하지도 않고.

나는 여행비를 아낄 수 있다는 계산에 그만 오케이 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호텔 앞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계셨다ㅠ.

그 덕에 우리는 편하게 모나코까지 드라이브를 하며 구경을 마쳤다. 사진도 찍어주셨다.

나는 미안함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같이 찍어드리는 것으로 보답했다.


도시국가 모나코의 깔끔하고 어여쁜 거리


어쩌면 이 친절한(?) 프랑스 퇴역 군인 할아버지와 친구로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정해진 계획을 세우고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니스에서 좀 더 머무르면서 현지인들이랑 어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분의 난폭한 운전 습관을 보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유명한 모로코 시장에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차를 세울 주차 장소가 없었다. 그렇게 뺑뺑 도는 동안 할아버지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친절했던 분이 서서히 컨트롤을 잃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모나코 대공궁
모나코 성에서 내려다 본 헤라클레스 항구 풍경. 저 아래 대관람차 옆에 북적이는 곳이 시장인데, 바로 저 곳에 우리를 데려가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나도 배가 고팠지만, 괜찮다고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도 몇 바퀴를 마저 돌았다.

그리고 다시 니스로 돌아가는데, 뜻대로 안되서 화가 나셨는지 차를 거칠게 몰기 시작했다.

나는 폐쇄공포증에서 벗어난 후 승용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앞 좌석에서 불안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뒷좌석에 앉아있는 딸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나 때문에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에, 내 안에도 분이 쌓였고, 이 할아버지랑은 아는 사이로도 지낼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산한 골목 풍경과 대조적인 럭셔리한 카지노 앞


다시 니스로 돌아왔다.

위험을 벗어난 것이다.

이제야 간신히 음료와 음식을 먹는데, 편하게 내돈으로 사려고 했으나 한사코 말렸다.

나는 아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무시하고 난폭하게 운전해서 화가 났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는 미안하다며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다고 그만하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즉시 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가능하면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남에게 주도권만큼은 잠시라도 넘기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이든

인생이든.


모나코에서 돌아오자 처음에는 낯설고 화려하게만 보였던 니스가 하루만에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도움을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나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었다. 이후로 어떠한 식-이성적 호의, 물질적 이익이나 편의 등-의 유혹이나 도움의 손길이 와도, 경계를 놓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내 처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여행의 목적을 똑바로 세웠다.


니스의 시장


어떻게 하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

다른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아니 타인에게 마음대로 나를 대해도 좋다고 허락하려고 헤어진 것이 아니다.

온전히 내가 주도해서 결단하고 책임지는, 삶의 "홀로서기"를 위해 이혼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이후로 여행이 끝나갈 때까지, 삐에르 할아버지의 부재중 전화와 독백의 이메일이 쌓여갔다.

옐로 피버에 더불어,

밝게 탈색한 내 머리색이 맘에 든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정말 불쾌하다.

그래도 어쨌든 지긋한 어르신에게 내가 괜한 희망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미안하다.


이전 04화"이제부터 조금만 더 행복하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