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하고 뒤안을 마주하는 것.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잊고 싶은, 그리고 피하고 싶은 기억들을 소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묻어둔 채 살고 싶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로 그 시절이 오히려 가장 치열했던 시간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현실로부터 달음박질 쳐왔는지 모른다. 일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비티>라는 영화를 아는가. 주인공 같은 우주 비행사는 아니지만, 가능한 중력을 거슬러 내 인생 자체로부터 떨어져, 멀리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땐 요즘 내 모습처럼 손쉽게 SNS나 유튜브로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낸다는 것은 내 운명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금 일도 쉬고, 수험생 엄마 노릇도 벗어난 이때, 가능한 한 바보같이 또 멍청하게 지내려는 것 같다.
그럼에도 웃음을, 가벼움을 되찾은 것이 감사하다.
이런 뱃심이 생겼기에 지나간 과거를 마치 추억처럼 다룰 수 있겠지.
그래도 회피하는 습성은 여전히 남아, 자꾸 미루고 미룬다. 그러다가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 묻게 되고, 또 끝까지 쓸 수는 있을까 의심한다.
여행도 비슷하다.
익숙한 삶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기 위해 떠나고, 감춰둔 내 본성을 드러내기 위해 떠난다는 점에서.
아무리 관광이 아니라 체류를 하러 가더라도, 내가 거의 필수적으로 하게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는 일, 그리고 뒤안길로 거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여행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 타워나 전망대, 혹은 성이나 언덕에 올라가는 일이다.
서울이라면 남산타워나 롯데타워 같은 곳에 올라서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 내려다보며, 잠시간 아등바등 살아가는 자신을 되새겨볼 수 있겠지.
이번에도 나는 전망대에 올랐다. 여기는 니스니까, 어김없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 그리고 다녀왔던 곳들을 찾아보았다.
진짜 집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꼭 한산한 골목길을 가보게 된다.
일부러 찾아가기보다는, 한적한 시간에 목적지를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모습들이다.
또 숙소를 나서는 길, 다시 돌아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숙소로부터 동네 슈퍼나 시장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길은 또 어떤가.
호텔에서 이틀 밤을 머무르고, 숙소를 옮길 때가 되었다. 삐에르 할아버지가 호텔을 알고 있어 불안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미리 에어비앤비에서 구해둔 아파트였다.
호스트는 아프리카계 미혼 여성이었는데, 자신의 침실을 제외한, 접이식 소파- 펼치면 침대로 변하는-가 있는 거실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참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눈 것 같다.
평소에는 휴식 공간이었음에 분명한 소파는 이제는 우리 차지, 그것도 침실이 되었기 때문에, 대신 부엌 싱크대 앞에 놓인 식탁이 대화장소가 되었다.
카메룬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곳에서 돈을 벌러 니스에 왔다는 S는 직업은 간호사였고, 키가 크고 날씬했다.
모녀가 장기로 프랑스를 여행한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좀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혹시 여기서 살려고 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그러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식민지 출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프랑스에서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부럽다고 하기에는 '올바르지 않은 것' 같아서, 그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자 이야기도 했다.
이혼 수속 중이라고 하자, 좋은 사람을 빨리 만나란다.
그러면서 자신은 여러 국적의 남자를 만나봤고 프랑스 사람과도 사귀어봤지만, 결국 지금의 같은 국적을 가진 카메룬 남자친구가 제일 좋다고 했다.
특히 프랑스 남자는 못됐고 진짜 바람둥이니까 혹시 여행 중에 만나게 되면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삐에르 할아버지를 막 떨쳐내고 왔고, 자꾸 전화가 오는 걸 무시하는 참이었는데, 잘 알겠다고 고맙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집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특히 해가 바뀌기 전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까지도 머물게 되었다.
아침 일찍, 나는 집을 나섰다.
일출까지는 아니었어도, 첫해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집에서는 S가 자기네 전통 음식이라면서 조그만 만두와 비슷한 요리를 해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날 밤, 파티가 있다며 S의 친구가 데리러 왔는데, 아무래도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특히 딸을 보며 너무 이쁘다고 연신 칭찬해 주었다.
나도 이렇게 아프리카계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낸 건 처음이었고 쾌활한 이들이 참 좋고 예쁘다고 느껴졌다.
헤어질 때 비쥬 하면서, 우리는 정말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