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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pr 13. 2019

Lost


한국에서 돌아온 후 거의 두 달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인터뷰에 여러 가지 일에 이래저래 치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몇 번 자리를 잡고 앉아 글머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심장 어딘가에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큰 홀이 마치 중력을 갖춘 것처럼 모든 에너지와 생각을 빨아들여 나는 '빈 공간'이 되었다. '빈 공간'이라는 자아의 비아냥 섞인 자기 판단에 그저 몇 번 끄적이다 이내 창을 닫곤 했다. 그 덕에 서랍에는 쌓여있는 '첫 문단'들만 수두룩하다.


나는 무엇에 마음을 두었던 것일까? 


글은 내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인데, 글을 삶에서 떼어놓은 진공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결국 내 빈 공간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을까?  결국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는 것이 글일 텐데, 삶의 레이어를 벗겨낸, 박피된 공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 이유였을까. 내 삶은 '너무' 목가적이고, 너무 개인적이며, 너무 특정화돼있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쓰기에는 너무 난 '한 꼬집'한 만큼의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나부터가 잘 알면서도. '한 개인'이 '온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내러티브의 힘을 알면서도, 마음은 꼭 그렇게 열심히 꽁꽁 조여 맨다.


아니면, 생각보다 '브런치'라는 공간이 주는 중압감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인문학이 열풍이라는 한국의 트렌드에 맞춰 개인의 표현을 극대화하고, 개인의 표현이 브랜드화될 수 있는 어떤 통로로서 구실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노골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이 곳에 글을 쓰는 것이 왠지 무서워졌다. 말하자면 경제논리와 개인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공간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돈을 벌 목적으로) 덧입힌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면 될까.    

모든 글이 마치 출판을 전제로 쓰이는, 목적이 뚜렷한 글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제대로 치장된 옷을 입지 않은 글은 내가 알아서 셧다운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원이 가득한 음식을 먹는 것 같은 글이 브런치에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도 그 비슷한 글을 써야겠다는 압박 비슷한 감정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나'도 없고, '삶'도 없는 이야기들을 의미 없이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부끄럽다...)


애초에 그게 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야겠다. 남들만큼 글쓰기에 죽기 살기인 열정이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봐도 내 열정은 식은 죽 후루룩 먹고 싶은 정도의 뜨뜻미지근함이고, 내 글의 재능도 화살이 돌을 뚫을 것 같은 기가 막힌 재능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어를 다 까먹어 식상 하디 식상한 표현으로만 글을 메운다. (나도 한심하지만 표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글을 더 읽던가, 글을 더 쓰던가 해야 할 텐데, 그러기엔 영어 공부도 갈 길이 천리길이라 양 쪽으로 마음만 급할 뿐 어디로도 길을 선뜻 떠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변명은 또 천리길을 한 걸음에 달려가지. 쯧쯧)


가다 보면 어딘가에 닿겠지, 라는 수필집이 예전에 있었는데, 그냥 그 제목처럼 글도 쓰다 보면 어디라도 닿겠지,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다시 쌓아가야겠다. 강가에 돌멩이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물이 고이고 송사리가 모여 아이들이 더운 여름날 물장구를 치며 송사리들과 놀 수 있는 것처럼, 쌓다 보면 물도 고이고 사람과 송사리들도 모여들겠지. 


덕지덕지 붙은 먼지와 검댕이를 훌훌 털고, 그저 일기를 쓰듯이, 꾸준히 일기를 쓰듯이, 이곳에서 다시 '나 찾기'를 해보자. 부끄러운 나도 나고, 그렇지 않은 나도 나니. 차마 시류에 어울리는 사람은 되지 못할지라도, 언제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나. 그냥 나답기만이라도 노력하면, 이만하면 됐다, 하며 어깨 툴툭툭 쳐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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