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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un 20. 2019

프리다 칼로, 사막, 선인장의 가시, 그리고 십자가와

지난 4월, 연합감리교회 한인공보부 기사로 내 글이 실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곳에 나눈다. 

원글 링크: https://www.umnews.org/ko/news/frida-kahlo-desert-the-thorn-of-the-cactus-the-cross-and-i (여담으로 에디터가 손을 본 글이라 어딘가 모르게 내 말투가 지워져서 좀 어색하다.)



월요일, 조금 일찍 도착한 터라 잠깐 다운타운에 있는 그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가게를 구경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좋아하는지, 둘의 작품과 관련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인, 멕시코 장벽까지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투싼에서 멕시코 태생인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참 새로웠습니다. 

저는 프리다 칼로를 참 좋아합니다. 

연달아 일어난 삶의 폭풍을 자신의 의지로 이겨낸 강한 그녀가 참 좋습니다. 

6살 때 앓은 척추성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얇고 짧았던 프리다는 항상 화려하고 긴 멕시코 전통치마로 자신의 다리를 가렸습니다. 

다리 길이가 살짝만 달라도 걷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꼈을 텐데,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살에 당한 전차 사고로 이번에는 왼쪽 다리의 열한 군데에 골절상을 입고, 오른발이 탈골되었으며, 허리뼈와 골반 그리고 쇄골 등이 골절되고 갈비뼈마저 부러졌습니다. 

이 사고로 그녀는 죽을 때까지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 차례의 유산과 총 35번의 고통스러운 수술을 겪어야 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신음이 절로 나오고, 아프다는 말도 목구멍에 걸려 뱉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몇 년을 침대에 누워 척추를 고정해 놓은 채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딸을 위해 프리다의 어머니는 딸이 볼 수 있는 거울을 준비해주고 자화상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세계라고는 거울을 통한 그녀의 얼굴밖에 없었기에, 자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 중 3분의 1인 55점의 작품이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프리다의 자화상을 좋아합니다. 

수술 후의 고통을 그린 자화상, 아이를 유산한 후 그린 자화상, 남편 디에고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안 후 그린 자화상…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이 오롯이 묻어나는 그러나 그 고통을 지그시 마주하는 프리다의 눈빛을 함께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지나며”라는 제목의 영성형성 아카데미는 5일간의 ‘나를 돌아보기와 나를 내다보기’를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사막과 그 속의 자연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만드는 새로운 받침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다른 높이와 세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제가 그 위에 설 수 있는 그런 지지대 말입니다. 

여태는 1층에서 바라보았던 하나님을 마치 사다리를 타고 약간 올라가 살짝 옆에서 좀 더 넓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평소에 분명히 알던 그 하나님이신데, 더 넓고, 더 깊은 분임을 살짝 경험한 것 같습니다. 여태 좋은 분이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뵈니 더욱더 놀라운 분인 것도요.

결국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그 누군가도 아닌 바로 ‘나’를 만난다는 것! 

그런데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평생을 함께하는 나인데, 평생을 통틀어 가장 만나기 힘든 것이 또 ‘나’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막에서 5일을 보내며, 침묵의 시간 속에, 나를 그리고 나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하나님을 함께 만났습니다. 

어릴 때는 성공회 피정의 집에서 하던 대 침묵이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번에 보니 참말로 풍성하고 부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십 대에 예수님을 만난 후, 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던데, 어쩜 우리 집은 이렇게 쫄딱 망했지.”가 저의 대표 원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온 가정이 믿기 시작했던 그다음 해 IMF가 터져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실패의 충격이 너무 크셨던 아버지는 쓰러지시고, 경제난이 너무 힘겨워 어머니는 암이라는 어려운 질병을 얻으셨습니다.

이십 대에 부모 두 분이 쓰러진다는 것, 집안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는 것, 항상 학교 갈 전철비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 마음을 자꾸만 작아지게 했습니다. 

큰 집에서 여유롭게 살다 산동네를 꾸역꾸역 올라가 그것도 산동네 끝자락에 있는 가장 작은 집 월세를 살게 되었을 때, 저희 이삿짐을 실은 차가 길가에 말려놓은 고추 더미를 살짝 밟았다고 난생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삿대질하며 욕하던 날, 그렇게 생기있고 명랑하던 어머니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꾸역꾸역 눈물을 먹는 어머니를 보며, ‘가난이라는 건 서러운 거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서럽게 참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삶의 질고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 없이 천 길 낭떠러지 좁은 길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에 자꾸만 가시가 돋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애리조나 사막 천지에 널려있는 선인장처럼 말입니다. 

살려고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들고, 풍성해야 할 잎사귀는 모두 말라 아주 뾰족한 흔적만 남기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살려고 모든 에너지를 사는 데 집중해야 했습니다.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내기를 한참 했습니다. 

“어둔 밤”은 진짜 깜깜해서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혼의 어둔 밤이라고, 참 단어도 기가 막히게 잘 지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들리지 않아서, 느껴지지도 않아서, 영혼이 단단한 어둠에 갇혀버린 시간을, 그는 그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시간을 말입니다. 

그런 몇 년을 아주 간신히, 목숨만 붙은 채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파송을 받고, 이제는 하나같이 부모님 같은 교인들이 우글우글(?)한 시골 작은 교회에서 그동안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차고 넘치게 받으며, ‘사는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길 리가 없는데… 하며 믿지 못할 만큼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애리조나에 이번 겨울은 이상하게 비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황량한 게 정상인 애리조나 사막이 온통 푸른 초장에 꽃밭이었습니다. 선인장이 선명한 색상의 꽃도 피워서,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생존에 집중해 푸르게 생기있어야 했던 모든 잎사귀를 가시로 만들어 버리고, 풍성함을 포기한 채 ‘살아남기’만 선택했던 선인장이 꽃을 맺기로 결심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사막의 메마른 공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로 몸을 감쌌던 선인장이 피우는 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선인장의 꽃은 매우 화려합니다.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선인장이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잃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마치 온몸이 부서졌지만 아름다운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 선명한 컬러의 전통 멕시코 드레스로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냈던 프리다 칼로처럼, 아름답게 나를 사랑하겠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삶은 결국 이겨내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 삶을 이겨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가시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나를 보호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동안의 고통이 녹아버렸습니다.


아카데미 첫날엔 선인장만 외롭고 뻘쭘하게 제단에 앉아 있었는데, 마지막 날엔 새가 찾아오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었습니다. 

가시가 돋친 영혼은 마침내 기쁨을 찾아 이 모든 창조의 하모니와 함께 평안을 찾았습니다.

강의실이 꽉 차도록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여정의 길목에서 이번 아카데미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가장 특별한 방법으로, 가장 넓고 깊게 우리를 아끼시는 하나님이 한분 한분 특별하게 만나주셨을 겁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며칠 동안 듣고 있으니, 아프지 않은 영혼이 없고, 무겁지 않은 인생이 없었습니다. 한 삶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다들 마음에 창과 칼을 한 자루씩 챙겨 들고 와서, 자 덤벼라 싸우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다시 한번 돌아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손에 쟁기를 한 자루씩 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챙겨 들고 온 창과 칼을 녹이고 벼려, 쟁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사막에 물을 대고, 돌을 솎아내고, 씨를 뿌려, 한낮의 태양을 감내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를 각자의 삶 속에 심을 농부가 되어있었습니다. 

낯선 이들이 가족이 되고, 서운한 이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과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나라, 땅을 일궈 남에게 소산을 나눠주는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짧은 5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모두 어깨에 나눠 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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