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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ul 09. 2019

다름에 대하여

우버를 타고 도심지에 있는 사무실을 떠나 오늘 묵기로 한 에어비앤비를 들어오는데 시카고 강을 건너자마자 길 가를 하릴없이 서성이며 배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언뜻 봐도 피부색이 검거나 갈색인 이들. 시카고 남쪽이 슬럼인 건 알았지만 시카고 서쪽인 이 동네도 한 때 심각한 슬럼 지대였다 최근 활발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중인 듯하다. 번듯한 건물과 으리으리한 규모의 프랜차이즈 쇼핑몰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증거이고, 그 건물들 바로 옆 공터에 모여 하루를 죽이는 허름한 차림의 유색인종이 아직 그 젠트리피케이션이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작은 안티테제이다. 


최근 십여 년 동안 시카고 주변부의 동네들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치안을 강화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렇게 젠트리 파이드 된 동네에는 젊은 힙스터들이 이사를 오고, 높은 학력과 소득 수준을 가진 이들은 오가닉 한 생활 방식과 음식을 고집해서 자연스레 물가가 높은 유기농 식재료 가게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도 함께 들어선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위험하다고 생각되어 갈 수 없었던 동네들이 이제는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펼치는 또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는 항상 양가감정이 있다. 그렇다면 이 곳에 살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몰려난 것일까. 건물이 리모델링되어 번쩍번쩍해져도 다행히 미국은 일정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건물을 제한된 저렴한 가격으로 세를 줘야 하는 법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도 세 걱정 없이 몇십 년 간 계속 살던 건물에서 계속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소수의 이야기일 뿐. 일단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된 동네는 물가도 엄청나게 뛰어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살 수 없는 지역이 되는 것은 결국 매한가지이다. '안전하고 힙한 동네'의 이면에는 그곳에서 몇십 년씩 살던 가난한 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렇게- 쫓겨난, '잊힌' 사람들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나조차도 오늘 우버를 타고 들어오다 보이는 노숙자들, 마약상들, 성매매 종사자들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에어비앤비를 잘못 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확 끼친다. 그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붉은 벽돌과 검은색 창틀로 고급스럽게 지어진 빌라들이 줄을 이어 나타난다. 알아보니 오래전 흑인 동네였던 이 곳은 그리스 이민자들이 처음 이민 와서 바닥부터 시작하던 동네였고, 그 후로 멕시코나 남미 이민자들이 터를 잡고 살다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이 모든 문화가 섞이고 융합되어 다양한 인종이 사는 동네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견고한 빌딩에는 젊은 소수가 살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이들의 공간은 여전히 '길 위'이다.




몇 해 전 시카고 대학을 다녀오다 밤에 길을 잘못 들어 슬럼가 한가운데로 들어간 적이 있다.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가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지내던 때였다. 노스웨스턴 대학이 있는 시카고 북쪽의 에반스턴은 소득 수준 평균이 매우 높은, 미시간 호수와 산책길, 대학의 젊은 에너지와 아름다운 전경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Evanston, IL

에반스턴이 미국의 평균인 줄 알고 있던 나는 그 밤 길을 잘못 들어 들어간 슬럼을 보고 숨이 멎을 정도로 경악을 했었다. 파란 잔디로 가득한 부자동네와 달리 잔디 한 포기 나지 않은 속살을 드러낸 바닥, 창이 깨져서 합판으로 창문을 막아놓은 집들, 추운 11월 밤에 드럼통에 불을 때며 몸을 녹이는 사람들... 슬럼에 들어간 지 오분도 되지 않아 경찰차가 가까이 와서 이런 곳에 이런 시간에 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경고를 주며 고속도로 입구까지 인도해주었다. 물론 슬럼의 모든 사람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위험한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게 부유한 백인동네와 슬럼의 충격적인 차이는 오랫동안 반향을 남기는 무언가였다.


https://www.theatlantic.com/business/archive/2015/08/more-americans-are-living-in-slums/400832/



오랫동안 시골에 살다 돌아온 시카고는 여전히 재미있는 동네이다. 대도시의 활기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나날이 더욱 섞여가는, 아시안인 것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아닌,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그러나 이 모자이크 안에는 '잊힌 사람들'이라는 조각도 있다. 이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 한 평 땅에 자리 잡아 햇볕을 이불 삼고 잠들어야 하는 사람들. 아이러니한 것은 거의 흑인이라는 점.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고 태어나 짐을 어떻게 매야하는 지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다름'에 대한 조직적이고 끔찍한 말살 행위. '나와 다름'에 대한 깊은 불신. 지금 내 보스는 흑인이다. 처음 인터뷰를 할 때 그는 "내가 흑인인데, 나와 일하는 것이 괜찮겠느냐?"라고 물었다. 백인이라면 물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그 질문. 필요하지 않고, 사실 질문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는 내게 질문했고, 나도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I'd love it!"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같이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보스는 평생 만난 사람들 중 얼마 되지 않은 매우 인격적인 분이지 않을까 한다. 흑인으로 태어나 미국 역사상 얼마 되지 않는 대학 총장을 지낸 분으로, 매우 유쾌하고 겸손한 분이다. 


피부색이 죄가 되는 사회라는 것. 피부색 때문에 끊임없이 '다름'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 마치 스티그마처럼 홈리스는 자연스럽게 흑인이고,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은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 "다름"에 대한 우리의 깊은 불신.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불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오래도록 생각하는 화두이지만, 답을 쉬이 찾을 수 없는 화두이다. 나와 다른 계층, 나와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Mutual Trust(상호 신뢰)는 어떻게 쌓여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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