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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Oct 30. 2019

고양이가 내 눈을 먹을까요?

지금 시카고는 Humanity Festival이 한창이다. 난 있는 줄도 몰랐던 축제인데, 일 년에 한 번 시카고에서 열리는 인문학 관련 강의, 전시, 공연이 한 달 동안 열린다. 고급스럽기도 하다.

라인업도 화려하다. 에미상을 수상한 공연의 작가가 하는 강연, 인문학을 주제로 한 여러 공연과 전시회(현재 시카고 미술관에는 앤디 워홀전이 열리고 있다.) 등등.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강연, 사형제 폐지에 대한 강연 등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시카고에서 산 지 3개월째, 이 도시가 너무 좋다는 사실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진보적인 도시인 시카고는 2016년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유세를 하지 못한 곳이다. 버락 오바마의 도시, 아브라함 링컨의 도시, 시카고.


지난주에는 "Will My Cat Eat My Eyeballs"의 작가, 케이틀린 도허티의 강의가 열렸다. 


장의사인 작가가 어린아이들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죽음에 대한 질문들- 그중 하나가 "우리 고양이가 내 눈알을 먹을까요?"였단다. 궁금할 만하다. 

그리고 대답은-

"우선은 안 먹고 싶어 한단다." 고양이도 애정이 있지. 그러나 그거라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긴 할 거란다. 그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강연을 함께 갔던 친구는 미국인이고, 친구가 한국은 어떻게 죽음을 이해하느냐고 물었다. 케이틀린 도허티는 미국은 죽음을 터부시 하고,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양 취급함으로써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마도 기독교적 이해의 영향일 텐데, 죽은 이는 6피트 언더에 (이 제목의 드라마도 있다) 시멘트를 곱게 바른 공간에 아주 비싼 오크 나무로 만든 (가난한 사람은 물론 훨씬 싼 관을 사용한다) 관- 그것도 온갖 화학처리가 되어 몇백 년은 썩지 않을 그런 관-에 들어간다. 물론 그의 몸 자체도 화학처리가 되어 썩는 것으로부터 최대한 보호된다. 아마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몸 그대로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장례문화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도 화장은 비교적 새로운 장례문화로, 아직 그렇게 보편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중세 시대 화형이 무서웠던 까닭은 죽음 당시 겪는 고통이 엄청나서이기도 하지만 예수가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부활할 몸이 없는, 즉 영원히 저주받은 부활할 수 없는 자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란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도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비교적 최근까지 화장이 터부시 되었으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실제로 묘를 만들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화장이 좀 더 활성화되었다고 들었다. 


지난겨울 잠깐 들른 한국에서의 프로젝트 중 하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재를 조금씩(한 움큼씩) 미국으로 가져와서 여기저기 뿌리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패했다. 어머니의 재가 모셔진 추모공원에서는 한 움큼의 재만 빼면 안 되겠냐는 내 질문에 웬 상미친 것을 다 보겠다는 듯이 취급했고, 아버지의 재를 조금만 빼겠다는 내 말에 온 가족들은 저것이 미국 물먹더니 그냥 예의범절을 다 까먹었구나로 들고일어나셨다. 결론은 나는 미국 물먹더니 미친것으로 결론 나고, 어르신들 등쌀에 짧은 여행에서 부모님 모시고 오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대신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선산의 아버지 묘 위에는 작은 나무를 심어 아버지의 삶을 나무와 나누는 것으로 결론 맺어졌다. (두 분이 어쩌다보니 다른 곳에 모셔져 있는데 자식이라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해외에 있다보니 그냥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함께 모실까 했는데 뭘 또 그렇게까지 싶기도 하고. 아버지 이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나는 호적에서 파일 지도 모른다.)





Pixabay.com




올해 마흔이 되면서, 나는 '늙음'을 천천히 보게 된다.

늙음과 죽음은 무엇일까?


스탭 미팅 시간에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겼다고 했더니 다들 웃는다. 노상 컴퓨터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니 손가락이 견뎌낼 재간이 없던 탓이기도 하고, 그와 함께 들어가는 나이에 대해 손가락이 '관절염'이라는 늙음의 필수 동반 질병의 이름으로 내게 '늙음'의 신호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의 나이가 참 좋다. 적당히 늙었고, 적당히 젊은 나이. 이보다 어렸을 때 나는 날 찾는 것이 참 힘들었고, 이보다 더 나이가 들면 (한 스무 살쯤 더 들면) 내 몸은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것을 어려워할 것 같다. 


적당히 사람을 알고,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더 지혜로워지기 전에 몸으로 아직은 부딪혀볼 수 있는 나이, 마흔.

그래서 이 나이가 참 좋다. 


그래서 이 나이에 발레를 시작하고,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배운다.

발레 수업을 받고 온 날은 발목이 시큰거리고 그다음 날 무릎에는 어김없이 파스를 붙이지만,

평생 써본 적 없는 몸을 '즐긴다'는 것은 이토록 자유스러운 경험이다.


피아노는 관절염의 영향으로 (거봐, 나이 드니 못하는 게 생긴다니까), 그만둘까 고민 중이다.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사랑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어느덧 아프고, 몸은 느려지고,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럽기보다 고통스러울 때,

죽음이 찾아온다.


또한 죽음은 공평하다. 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모든 종교의 출발점이지 않았을까.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이 생겨나고, 인문학이 태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 세상에서 죽음은 더 이상 공평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유발 하라리가 그의 책에서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부자들- 예를 들면 구글 사장이라던가 뭐 그런-은 이미 몸을 대체 가능한 '그것'으로 보고 그것의 대체를 실현시킴으로써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불멸'을 꿈꾼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을 마치 치료 불가능한 형벌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이 모든 것이 마치 우리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죽음-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마치 우리 문화가 죽음 없이 영속될 것처럼 위장하는 것처럼.



죽음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거창한 철학적 이해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죽음을 이해해야 했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경험은 언젠가 썼던 것처럼, 지구의 축이 이동을 하는 일이다. 지구가 마치 평행 이동하듯 내 애정과 기억은 고스란히 남고, 다만 그 대상만이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경험이다. 이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모든 고통이 의미가 있는가?


칼 융이 이야기하는 그 우주처럼, 나는 세계가 크로노스의 시간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앞과 뒤가, 어제와 오늘이, 내일과 과거가 모두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있고, 한 '삶'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다만 그 다른 모습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려져있을 뿐이다. 마치 바울이 고린도 13에서 우리가 지금은 부분만을 알지만 이후에는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삶은 삶이고, 죽음도 삶이다. 


그래서 이 피할 수 없는,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혹은 내 결론은,

"최선을 다해서 아주 즐겁게 산다"이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오면, 

"최선을 다해서 아주 즐겁게 죽는다"이고.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한데,

그것만이 내 삶과 죽음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인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는 삶의 과정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경의롭게 대하고 싶다. 그리고 즐거워하기로 했다. 삶을 포기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되, 죽음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경의롭게 대하기로. 죽음은 단지 삶의 다른 한 면이기에.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간 모든 내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게 넘어간 다른 면의 삶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 나도 언젠가 그곳에 닿으리라는 기대.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



휴머니티 페스티벌에서 친구가, '죽음은 죽음이다'라며, 비싸 오크관이 무슨 소용이고, 회벽을 바른 무덤이 다 무슨 소용이냔다. 자기는 벌써 죽음에 대해 변호사랑 상의까지해서 다 결정해놨단다. 화장하고, 그냥 싸구려 나이키 운동화 박스에 넣어서 장례를 치뤄달라고. 내가 거기 없는데 비싼 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신박했다. 죽음 이후의 내 '몸'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죽음 이후에 '내'가 어디 있을 것인가만 고민했지. 심지어 친구는 자기 계획을 부모님한테까지 알렸단다. 당연히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고. 


우리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결론, 그러나 누가 혹시 아나, 그 뒤에 훨씬 더 아름다운 공간과 세계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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