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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an 01. 2020

두 교황 the Two Popes

Netflix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많습니다.)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나질 않아 도통 보질 못하다

어젯밤에서야 넷플릭스에서 봤다. 나는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딴 그의 교황 명부터, 여러 아티클에서 읽은 아르헨티나 일반 주교 시절 에피소드, 그리고 동성애 문제와 사생아 문제에 대해 그가 했던 행동이나 발언으로 이미 팬인 상태였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종하지 않고 은퇴하셨다는 사실을 아주 옛날에 들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간신히 나고 있었다. 럭셔리 메이커를 좋아하셔서 구찌나 프라다 같은 신발을 즐겨 신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웃었던 기억과 함께.



로튼토마토에서 89점으로 나쁘지 않은 점수를 기록하는 영화로, 따뜻하고, 애정이 깊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러나 서로는 신학의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반대 지점에 서 있는 두 교황의 이야기이다. 어디까지가 실제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넷플릭스는 실제 이야기라고 광고를 하는 모양이다. 바티칸이 가만있는 거 보면 어느 정도 실제이기는 한걸 지도.


개인적으로 몇몇 부분 매우 매혹적인 장면들이 있는데, 처음 베네딕토 교황이 선출되었던 요한 바오로 6세 선종 후 열린 콘클라베 (Conclave)에서 추기경으로서 두 분이 처음 화장실에서 만난다. 손을 함께 씻는 중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래를 흥얼거리자 베네딕토 16세 (당시 추기경)께서 "오, 무슨 찬송가를 흥얼거리십니까?"라고 묻고,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아바의 댄싱퀸(Dancing Queen)이요! 좋은 노래입니다!"라고 답하신다.  뜨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 아바(Abba)가 뭔지, 웬 추기경이 세속 노래를 부르나 싶으셨는지 답도 안 하시고 나가는 베네딕토 16세. 두 분의 삶이나 철학이 여러모로 달라서 실제로도 추기경 시절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 아바의 댄싱퀸이 신나게 흘러나오며 주교들이 모이는 장면을 재치 있게 보여주는 이 영화. 댄싱퀸의 명랑함에 웃음이 터진다. 이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부터 몇년 후,

75세가 되어야 추기경은 은퇴가 가능함에도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원했고, 몇 번이나 교황청에 은퇴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음에도 답장이 없자 아예 직접 로마로 가기로 결정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구입한다. 그러나 티켓을 구입하자마자 교황청에서 온 답신. 베네딕토 16세가 당신을 보기를 원하므로 로마로 오라는 편지. "왠 우연이죠?" 하며 교회 신도가 묻자, 추기경님의 답변은 "세상에 우연이란 없어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There is no coincident in the world. Everything is in God's hands!)


애써 로마에서 와서 교황을 만나 은퇴를 요청하는 추기경. 그러나 혼만 엄청나신다. 교회가 지난 2천 년 동안 가르쳐온 가르침에 위배되는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이유로 교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교황이 인식하신 모양이다. 영화는 그가 사생아에게 성사를 주고, 동성애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서도 개혁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사생아에게 성사를 베풀었으며 동성애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이가 사랑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그 유명한 "Who am I to judge?(내가 무엇인데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교황이 되신 후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엄청 실망했던 기억과 함께.

이 첫 장면에서 교황이 서릿발 선 질책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짧게 답변하는 그의 말에 여러 번 '아멘' 했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부분 중 하나였다.


라이프스타일도, 신학도, 살아온 삶도 모두 다른 이 두 교황. 그러나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삶에 깃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게 되고 경외한다. 이토록 다르나, 고통스러운 결정과, 실수, 잘못을 서로에게 고해하며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삶과 신학에 다른 모양으로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인다.



또 다른 장면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다른 신학과 이해를 가졌음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깊이 신뢰하게 된 즈음 두 분이 바티칸에서 피자를 시켜 드시는 장면이다. 피자가 오자 프란치스코 교황(아직 추기경 시절)이 베네딕토 16세에게 식사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교황이 기도를 해주신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맛있는 식사를 주셔서." 기도가 끝난 줄 안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피자에 손을 대는 순간, 기도를 계속 이어가는 교황. "교회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무찔러 주시고...." 추기경님 당황. 교황님의 기도가 몇 번 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추기경님의 손이 몇 번 더 손이 왔다 갔다 한 후에야 교황께서 추기경을 보고, "더 붙일 기도 있어요?"라고 묻고, 추기경님의 덧붙임, "아멘?" (아멘 하시면서 피자에 손이 가는 게 웃음 포인트)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을 지나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가 예수회 수장이었던 시절 군부 독재와 호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으로 교황이 되기 직전까지도 재판정에 피의자 신분으로 오갔다고 한다. 당시 실제로는 뒤로 여러 군부 반대 세력들을 해외로 도망시키거나 예수회 관저에 몰래 숨기는 등의 방식으로 도우셨으나 겉으로는 군부 세력을 돕는다는 의혹을 받았고,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그가 베네딕토 16세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님은 그때 어디 계셨을까요? 군부의 사치스러운 관저에서 술을 마시고 계셨을까요, 아니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죽어가고 계셨을까요?"


베네딕토 16세는 "하나님은 당신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위로한다. 눈물이 핑 도는 질문과 대답. 교황도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 같이 평범한 목사도 해도 되는 질문이겠지, 하며 나를 위로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고해가 끝나자 이번에는 베네딕토 16세의 고해. 그의 장면은 다른 한 추기경이 오랫동안 교회에서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해 온 것을 그가 미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는 잡음 처리된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바티칸이 아동 성추행 문제와 관련해서 추문에 휩싸여 있는 것을 아는 우리는 어떤 고해였을지 대강 짐작하게 된다.


 그 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이 된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며 자신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지난 이틀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평소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의 목소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건 베르골리오 추기경, 당신의 목소리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이듬해 사임을 발표하시고 (라틴어로 발표하셔서 역시나 20% 추기경만 알아들음)   콘클라베에서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당선된다. 비싼 교황 물품을 하나도 쓰지 않으시고 평소 자신이 쓰던 신발과 십자가를 메고 단에 오르는 프란치스코 교황. 평소에도 호화로운 추기관저에 살지 않으시고 작은 집에서 손수 식사를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검소하시다.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실제로도 교황으로 당선된  추기경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같이 모자란 사람을 교황으로 뽑은 당신들을 하나님이 용서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남미의 해방 신학,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는 예수를 실천하는 교황이 당선된 것이, 교회 개혁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하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혁적인 교황이라 너무 기대를 한 나머지 나같이 여성 안수나 동성애 문제에 관심 많은 사람은 생각보다 느린 교회의 움직임에 조금 실망을 했달까. 수녀님 치마 길이 1센티를 줄이는데 20세기가 걸리는 교회인데, 이 정도의 변화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좋아하는 교황은 지금도 미사를 인도하거나 강론할 때마다 가까이 오는 아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같이 사진을 찍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유명하다. 참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다.

베네딕토 16세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좀 더 내성적일 뿐, 교회와 하나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깊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너무 좋다. 하나님 사랑의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 옳고 그름에 대한 저항과 정의에 대한 사모.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 독일. 두 교황의 나라라서 두 분이 함께 시청하셨단다. 실제로도 두 분 모두 축구 광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두 분이 앉아 계신 방 바깥에 켜져 있던 기도 초가 다 되어 불이 꺼질 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마치 잘 드려진 제사의 연기가 하나님께 흠향된 것처럼, 감독의 센스가 위트 있게 그려진 장면이다. 둘의 연합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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