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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pr 21. 2020

20년 만의 와호장룡

이토록 눈물 나는 영화일 줄이야

장쯔이랑 동갑이니까, 장쯔이가 스물두 살에 찍은 영화를 스물두 살에 봤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흘러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았다. 

이토록 눈물 나는 영화인 줄 나는 이십 년 전엔 몰랐다.


아카데미가 극찬한 영화라던가, 유려한 영상미라던가, 뭐 그런 화려한 수식어에 밀려 아마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보았던 것 같다.

 '용'으로 인해 파괴되는 리무바이와 수련의 인생에 한탄하느라, 

그렇게 또 삶이 그렇지, 할 틈도 없이 영화를 보았다. 내내 이 대책 없는 어린 아가씨 때문에 화를 내며 

보느라 영상미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이토록 답답한 영화는 무엇인가....! 하며. 

곰곰이 기억을 되살려보니 리무바이와 수련에게도 감정을 이입하지 못했다. 

스물두 살의 나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영특함과 재능이 뛰어나 일찌감치 자신을 가르쳐준 초년의 스승을 뛰어넘는 용.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났지만 신분과 성별에 매인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젊고, 아름답고, 재능 있고, 투지마저 놀라운 그녀는 무언가 뒤틀려있다. 

그녀를 가르친 Jade Fox (내 기억에 '푸른 여우'로 해석이 되었던 것 같다) 탓인 걸까. 

참된 우정은 없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며 조소 어린 못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련과 리무바이에게 내뱉는다. 아마도 무도를 배운 사람이라면 아는 것이 당연했을 위엄, 진실함이나 존엄성 같은 가치는 알지 못하는 듯 자신의 목을 겨누었던 칼을 내리는 수련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약속과 다르게 리무바이를 배신하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다. 아마도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던 탓이겠지.


그런 그녀를 리무바이와 수련은 젊은 치기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인내로 대한다. 

용이 가진 재능을 아까워하며 계속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요청하는 리무바이. 

철없이 리무바이의 검을 훔친 용을 자매로 대하고 가능한 한 용과 그녀의 가족의 명예가 

해를 입지 않게 하려 노력하는 수련. 아마도 그들 또한 이런 치기 어린 시간을 지냈기에 

용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십 년 만에 다시 본 와호장룡은 용의 치기 어린 젊음의 실패를 통해 엿보는 리무바이와 수련의 이야기이다. 용와 호의 어린 사랑을 바라보는 리무바이와 수련의 깊은 우물 같은 사랑 이야기. 

용과 호는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용이 귀족가 자제에게 시집가던 날 호가 결혼 행렬에 난입하여 행패를 부리고, 그날 밤 용은 청명 검을 훔쳐 어딘가로 달아난다. 영화에서는 정확히 용이 도망을 간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호를 만나기 위해서일지도, 혹은 그토록 원했던 자유로운 검객의 삶을 살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귀족 집안의 딸로서의 삶, 안채에 갇힌 여성으로서의 삶을 벗고 남장을 한 그녀는 마냥 자유롭다. 

치기 어린 젊음은 그녀가 도착하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게 한다. 

재능이 넘치는,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유를 얻은 어린 용은 제어할 수 없는 화산처럼 분노를 담은 

칼끝을 만나는 모든 이에게 넘치도록 뿜어낸다. 그녀는 누군가의 딸, 애인, 제자가 아니라 '용' 그 자체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직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해 그녀 그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제되지 않은 분노를 퍼붓는다. 그 누구도 신뢰하는 법 또한 잘 알지 못한다. 




이 아름다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저미는 장면은 두 군데였다. 한 장면은 철없이 검을 들고 

도망간 용을 찾으러 가는 리무바이와 수련의 잠깐의 휴식 동안의 대화. 아름다운 대숲 안에 지어진 

작은 공간에서 잠깐 차를 마시며 리무바이는 수련의 손을 잠깐 만지고, 그녀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댄다. 


수련의 손을 잡은 채 "세상에 우리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흘려보낼 때에야 우리는 

마침내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리무바이. 그런 그에게 수련은, 

"그러나 지금 잡은 제 손은 진짜가 아닙니까?"라고 묻고, 그제야 "나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리무바이.


수련의 약혼자이자 리무바이의 친구였던 이가 대결 중 죽자, 

둘은 친구에 대한 예의로 평생 사랑해 왔으면서도 서로 거리를 지키며 지내왔다. 

평생 감춰온 감정은, 평생 표현하지 못한 사랑은 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름다운 대밭에서의 결투 숲은 아마 오랫동안 회자될 아름다운 장면일 것이다.

혹자는 신구, 새로운 세대와 오래된 세대의 갈등이 표출된 장면이라고도 해석했던데,

갈등이라기 보다는 어리숙함을 바라보는 완성하지 못한 인생의 곡소리처럼 보였다.

평생을 무림에 살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한 번 표현조차 하지 못한 리무바이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어린 용에게 정직하게, 가득하게 한번 살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장면으로 보였다.




그리고 Jade Fox, 푸른 여우의 계략으로 독침을 맞고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리무바이.


아, 이제야 겨우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그인데. 삶은 느린 그의 걸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해독약을 구하러 간 용을 기다리는 동안 숨을 고르고 힘을 아끼며 기다리던 리무바이는 자신의 숨이 다한 것을 알고 수련에게 말을 건다.


그러자 수련은 "당신의 마지막 숨을 내게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용하십시오"

라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리무바이는, 


"난 이미 평생을 허비해왔습니다 (I already have wasted my whole life)."

내 마지막 숨을 빌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평생 그랬습니다 (I want to tell you with my remaining strength... that I love you. I always have)."



삶의 마지막 숨을 빌어 전하는 진심. 아마도 이 고지식한 남자가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생 사랑한 사람에게 건넨 고백. 아무리 선을 행하고, 타인에게 이로운 삶을 살아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삶이라면, 그 삶은 '허비된 것'이 맞지 않을까. 


마지막 숨과 함께한 고백을 들은 수련은 붉게 충혈된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함께 

리무바이에게 마지막으로 키스를 건넨다. 키스를 퍼붓는다.

내 개인적으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장면은 수련의 눈물이었다. 

양자경의 연기는, 사랑이 너무 깊어 매순간 가슴이 저미는 사람의 절절함을 

마치 실크 장을 따로 세어 넘기는 듯이 섬세하다. 

평생 목구멍으로 수백번을 넘겼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하염없이 눈물로 쏟아내는 장면은 

마치 수련이 모든 세월 쌓아둔 회한과 애정, 후회와 그리움이 내게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했다. 


수련 또한 모든 것을 잃었다. 애초에 가진 적이 없지만 항상 가졌던 이를 떠나보낸 수련은 이제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다. 죽어가던 리무바이에게 수련은 "내게 희망을 줘요 (Give me some hope)"라고, 해독약이 올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수련에게 리무바이는 그녀의 세계 전부가 아니었을까. 이제 수련은 어떻게 살아가지. 무엇이 남은 삶인가.


뒤늦게 해독 약과 함께 도착한 용에게 수련은 청명검을 들고 다가간다.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느낀 용은 눈을 질끈 감지만, 수련은 용의 목 바로 앞에서 칼을 멈추고는, 

칼을 태 선생에게 돌려주라고 다른 이에게 주어 돌려보낸다. 

그녀의 복수는 그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과거의 용을 상징적으로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후 용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건넨다. 


"내게 약속해줘. 네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너 자신에게 정직하겠다고 (Promise me whatever path you take in this life, Be true to yourself)." 





호가 기다리는 무당산의 끝없는 계단을 오르는 용. 산은 아득히 깊고 높아 어디서부터 

그녀가 올라왔는지 그 시작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기를 결정했을까.


소원을 빌어달라는 용의 말에 호는 "너와 함께 다시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빌고, 

호가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동안 용은 태산과 같이 높은 무당산의 꼭대기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호는 체념한 듯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안개가 자욱이 낀 높디높은 산자락을 하염없이 떨어지는 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마지막 부분은 특별히 이십 년 전에는 단순히 용이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도약한 것으로 

이해를 했었는데, 이십 년 만의 다시 본 마지막은 용의 죽음이었다. 

어떻게 이 마지막을 그녀의 새 출발로 이해했던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삶의 모든 굴레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수련도 리무바이도 그러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 숨 한 조각에서야 비로소 솔직할 수 있던 그들.


귀족 집안의 딸로서, 전족을 강요당하던 시대의 여자로서, 남들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지고도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비열할 정도로 치열해야 했던 용에게 (그리고 아마도 그의 스승 푸른 여우도)

 '솔직함'이란 무엇일까. 푸른 여우는 끝까지 배우지 못했던 그것일 것이고, 

용에게 솔직함이란 그 어느 것도 그녀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처절한 현실이지 않았을까. 

그 어느 누구의 용이 아닌 그녀 자신이 되기 위해 그녀는 죽음으로 자유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남보다 높은 이상과 윤리로, 친구의 약혼자를 평생 사랑했지만 손 한번 

만져보지 않은 리무바이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삶을 허비했다"라는 기분. 마지막 숨을 짜내어 전하는 진심이라니.



"삶의 모든 굴레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삶은 결국 극이 없는 모호한 경계의 연속이라고 누가 그랬다.

옳고 그름도, 그 어느 것도 칼로 자른듯 예쁘게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세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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