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역습

저도 중년은 처음이라

by 솦 솦

당황스럽다.


순간적으로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이 당최 뒤죽박죽이다. 때로는 어제 만난 반가운 친구가 전해준 그녀의 고단함이 안쓰러워서일 때도 있고, 때로는 아무 뜬금없이 고등학교 때 장염이 걸린 나를 데리러 온 엄마의 눈주름이 보여주는 엄마의 피곤함이 마음 아파서일 때도 있다. 심지어 마치 섬망처럼 난데없이 다섯 살 무렵 일요일 아빠가 해주는 팔베개를 밴 채 아빠를 따라 불렀던 천자문 노래(하늘 천 따지 그 노래)가 생각나서 괜스레 마음이 뜨끈해지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는 추억을 헤집는 편이다. 하기야 마흔이 넘어서도 앞으로의 야망 있는 미래를 그려내느라 항상 미래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마는.(그러나 또 모르지) 조금만 시간이 느슨해지는 것 같은 짬이 생기면 내 생각은 어김없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얽혀있는 실타래에서 아무 실이나 쭉쭉 뽑아내어 읽기 시작한다. 원래부터도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이건만(MBTI에서 공상가로 꼽으라면 갑 of 갑인 INFJ다. 참고로 세상에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 희귀 유형이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쳐 이 즈음 오다 보니 이제는 저장고에 쌓인 기억이 꽤 되는 것 같다. 꽤나 한참 뒤질 수 있다.


사십이 불혹이라는데, 유혹에 걸리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은 여전히 유혹투성이이고, 다만 그것에 걸릴까 말까를 고민할 정도의 거리감은 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불혹은 잘 모르겠지만 여태의 삶에서 모아진 경험치가 올라간 것은 알 수 있다. 그 경험치가 이 유혹 투성이 세상에서 '된다, 안된다', 혹은 '그렇게 살래, 말래." 정도를 말해주는 것일지도.


마흔은 매력적인 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적인 나이다. 이제는 꽤 살아서 스무 살의 나처럼 아직 여드름이 가라앉지 않고 젖살도 통통하게 올라 어리바리하지도 않고, 꽤 살아서 어른같이 느껴지는 데도 이제 막 자리 잡은 사회인으로서의 짐이 무거워서 가끔은 스무 살의 나를 그리워하며 펑펑 우는 어설픈 서른 같지도 않다.


이십 년에 가까운 학교생활과, 또 그만큼의 세상을 겪어본 후에 도달하는 나이. 나날이 다르게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걸 느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뼈마디가 아직 허약하지는 않은 나이.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날들, 깃털처럼 가벼운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렙의 경험치를 달성할 (수도 있는) 나이. 사십.


유행을 따르다 열에 아홉은 쇼핑에 실패하던 이십 대와 삼십 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내게 어울리는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아는 나이. 어울리지 않으면 무리할 이유가 없을 아는 지혜 정도는 깨우쳤다. 사람 보는 눈도 생겼다고 가끔은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게 흠이라지만. 역시 사람은 40년 정도의 경험치로 판단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경험치를 만렙으로 쌓는다는 건 기억을 쌓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경험은 기억이 되어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그중 필요한 데이터를 쏙쏙 뽑아 필요한 때에 '경험치'라는 이름으로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가끔 문제를 일으킨다. '경험'이라는, 사십 만렙에게 꼭 필요한 이 필수요소가, 가끔씩 버그를 일으키기도 한다.


슬픈 기억, 고통스러운 마음, 해결되지 않은 과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생후 두 달이라는 깜찍한 나이에 우리 집에 와서 그 후로 14년을 함께 한 내 첫 번째 강아지와 첫 번째 강아지를 보낸 후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한 달 만에 정신없이 입양해 와서 16년을 함께 한 두 번째 강아지에 대한 기억.

첫 번째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되어서 두 번째 강아지는 프로페셔널하게 길러냈다. 경험치 만렙이란 건 이런 것이지 우후훗, 하며 사료 선택부터 운동량, 병원 가는 횟수 등 누가 봐도 개 좀 길러보셨구먼 싶게 둘째 강아지를 길렀다. 그리고 내 기억은 말도 안 되게 여기서 버그를 일으킨다.


'아, 두 번째 아이를 잘 길렀더니 그러지 못한 첫 번째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두 번째 강아지에게 건강에도 좋은 사료를 먹이면서 흐뭇해하면서도, 첫 번째 강아지에게는 무엇을 줘야 하는지 몰라서 시골 똥강아지 키우듯 먹던 밥 물에 말아서 주는 것도 괜찮은 거라 여겼은 때가 기억나서 가슴이 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강아지에게 밥을 주다니! 하며 경악할 일이지만 내가 어릴 때는 애완견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소할 때라 우리 가족에게 개를 키우는 개념은 똥강아지 남은 밥 주던 시골 할머니 댁 기억뿐이었다.


아니 삼십 년 전 일을 지금 가슴 아려하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안다, 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이 가슴 아림이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쉽게 이 아린 마음을 내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 아린 마음이 의미하는 첫 강아지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쓸모없는 줄 잘 아는 대책 없는 죄책감으로 난데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미안해하게 된다.


비단 첫 강아지에게만 이랴.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두 번째 강아지에게도 못해준 것이 달달 생각난다. 더욱이 둘째 강아지가 작년 오래 아픈 후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넌 터라 이런 식으로 가슴 아리고 미안한 마음이 더욱 증폭되어 마치 섬망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플래시백처럼 가끔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는다.


기억의 저장고에는 이렇게, 객관적 사실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인물, 상황에 연결된 감정도 함께 저장이 된다.


우리는 강렬한 감정도 함께 기억한다.


뭐 이런 것 말이다.


첫사랑, 그 말만 들어도 설레는 그 이름이랑 함께 초여름 농활을 가서 함께 걸었던 산책길의 벌레 소리, 살짝 덥지만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았던 그 날씨, 조용한 그 시골길에 둘이서만 어색하게 함께 걷는 자갈길의 자박 거리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기억을 관통하는 심장이 졸아드는 것만 같이 설레던 그 느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기억한다.


그런데 뭐 좋은 감정만 기억에 남나. 그렇지 않은 감정들도 여전히 함께 저장된다. 그렇다 보니 가끔 뜬금없이 아직도 강렬하게 다시 화가 난다던가, 아직도 강렬하게 여전히 미안하다던가, 하는 일이 발생하고는 한다. 특히나 슬픈 경험, 혹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에 대해서 골몰하여 해결 방안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이 잡다하게 많다 보니 가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 뭘 얼마나 쌓아놓고 있는 거야? 뭐가 이렇게 다사다난한 이벤트와 감정, 그리고 좀스러운 찌꺼기까지 담겨있어?


긍정적이지 않은 기억이나 감정 또한 차곡차곡 쌓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또 그것에 의외로 천착하여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며, '와, 이거 자칫하면 못나고 추하게 늙어가는 중년이 될 수도 있겠는데'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소름이 끼쳤다.



기억한다고 다 같은 기억이 아니고, 모든 기억과 감정이 나를 형성하게끔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irthday-cake-757107_1280.jpg 출처: pixabay.com



그래서 마흔은,

아마도 더욱 나를 가꾸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나이이다.


여태까지의 못남과 잘남은 때로는 부모님 덕이거나, 타고나기를 복스럽게 난 탓이라도 할 수 있었겠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지금까지 쌓인 경험과 기억을, 감정과 감정이 남기는 통증을 어떻게 다스리냐가 나머지의 나를 결정할 것이다. 담겨있다고 모두 내 감정과 기억일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했다.


누가 그러지 않는가 냉장고도 삼십 년 이후부터는 사용자 잘못이라고. 삼십 년까지는 부모님 탓을 한다고 쳐도, 마흔은 누가 봐도 내 탓이다. 사용자의 사용방법 탓인 게다.


가슴 아프고 쓰라린 기억으로부터는 교훈을 얻되, 마치 아즈카반의 죄수들을 지키는 검은 유령의 존재들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난데없는 울화나 서운한 마음, 새삼스러운 죄책감들은 산뜻하게 묶고 정리하여 내 마음을 더 이상 멍들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자꾸만 마음을 좁아지게 만드는 모나고 상처 입은, 구린내마저 날 듯한 캐캐 묵은 감정들은 창문을 열고 탈탈 털어내어 새롭게 환기를 해야겠다.


그래 네가 그때 나를 서운하게 했을 수도 있지. 그러나 그게 지금의 네가 아니고,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이제는 더 이상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 건네지 못한 미안함이 자꾸만 차곡차곡 쌓여 오히려 내 마음을 구깃하게 만든다면, 지금은 산뜻하게 털어버리고 이제부터라도 미안한 마음은 쌓아두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건네기를. 작은 것에 서러워 말기를.


여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들겠지.

"라테는 말이야-"하며 주변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답답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은,

시간을 들여 내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고,

조금이라도 때가 끼는 곳이 없나 잘 살펴야겠다.


이 나이는 처음이라,

오늘을 잘 살아낸다는 것은 항상 참 어려운 도전과제이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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