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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pr 15. 2021

42

세상을 다 아는 그 숫자

출처: flickr.com



40도 귀여웠고, 41은 뭔가 쿨한 느낌마저 주었는데, 42는 왠지 우울한 숫자였다.

이제 뭔가 진짜 40대인 것 같아서, 기분마저 나빴다. 


42세 생일이라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안내서"에 보면 42가 답이다. '깊은 생각(Deep Thought)"이라는 컴퓨터가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은 42입니다."라고 750만 년을 깊이 생각한 후 대답했다.

이 숫자 42와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가설들이 후에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대개 뭔가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사실 더글라스 애덤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광팬이라서 42가 답이라고 보는 가설(앨리스에 42는 꽤 중요한 숫자다), MS 도스의 아스키코드가 42라서 그렇다는 가설, 42를 일본어의 고로아와세로 읽으면 "죽음"이라서 거기서  연유되었다는 설 등등... 그러나 정작 책의 저자 더글라스 애덤스는 글 쓰다가 아무  의미 없이 작은 숫자 하나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책상에 앉아서 정원을 내다보다 그냥 적당해 보여서 골랐단다. 심지어 그만 가설을 만들어내라고 잔소리까지 했다고.


어쨌든 그 이후 애플의 Siri도 인생이란... 하고 물으면 42라고 대답하고, 온갖 게임이나 영화에도 42와 관련된 작은 이스터에그들이 재치 있게 숨기기 시작했단다. "은하수..." 책은 영화로도 나왔는데, 영화에서도 42분이 되는 장면에 컴퓨터가 "42"가 답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귀엽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은, 이제 진짜 인생을 십 년씩 세 번 살고 네 번째 십 년을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 42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 안내서"의 42는 그나마 나로 하여금 내 나이를 다시 보게 만들어주었다. 또 아나? 올해 나는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시간일 거라고 우주가 나에게 보내주는 긍정 메시지인지. 우주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하니 내 새로운 나이를 (초큼) 사랑할 수 되긴 했다.


십 년씩 세 번을 살고 네 번째를 시작한 지 2년이 되면서 보니, 쌓이는 것은 기억이 되고, 관계가 된다. 

42살의 나는 지난 모든 시간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98세의 할머니가 98년의 기억과 관계를 모두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도 여전히 내 기억 속엔 발그레한 볼을 가진 열여덟 소녀이고, 벌써 삼십 대가 다 되어가는 오래전 가르쳤던 아이들도 내 기억 속엔 열두 살 천방지축 아기이다. 그렇게 보면 시간은, 또 우리의 기억은 참으로 신기한 존재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선연히 존재하고, 일직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혼재한다. 현재를 통해 과거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미 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시간이 일직선으로 흘러가든, 평행우주가 어디에선가 여러 개의 나를 동시에 존재시키며 포개어놓든, 42년과 4일을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오늘치의 나를 잘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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