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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un 23. 2021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다른 책을 찾느라 알라딘에 들어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간이 나와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우선 질렀다.

[남아있는 나날]의 마지막 부분, 저녁 무렵 등이 켜지는 모습에서 희망을 찾던 늙은 집사의 모습에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끈질기게 다른 책들을 읽어나갔다. 영어 원본으로 읽지 않아서 본문의 뉘앙스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글은 도저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다. 미사여구가 달리지 않은 담백한 그의 문장은 36.5도라는 인간의 체온이 딱 알맞게 느껴진다. 체온이 느껴지는 문장을 몇 번이나 만나는가? 적어도 나는 자주 만나보지 못했다.

그의 소설은 항상 일인칭인데, 일인칭에서의 묘사가 주는 독특한 상황 이해가 항상 소설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생은 자신의 뜻보다는 주변의 환경에 따라 흘러가며, 나의 삶이지만 나는 삶의 인과관계를 다 알지 못하므로 현재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낸다.


[클라라와 태양]은 이런 점에서 당황스럽다. '주인공'인 클라라는 아이를 양육하는 서비스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으로, 우리는 로봇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에 당황하여 어디에 감정을 이입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내가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 존재는 클라라인가, 아니면 클라라가 바라보는 세계인가.

클라라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은 인간이 느끼는 간절한 소원과 같은 형질의 것인가, 다른 이질의 무엇인가. 사람과 같은 형상을 하고, 사람과 흡사한 사고체계를 가졌으나 결국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클라라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재현된다.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같이 클라라를 대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와, 어색하지만 클라라를 인간으로서, 아니, 인간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애매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인간과 흡사한 관계를 맺기를 시도하는 사람들.


이 모든 어색한 시도와 대화 속에서 독자로서 우리는 혼란을 느끼지만, 클라라는 한 번도 그들의 의도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시도와 정의, 자세는 그들의 문제이고, 클라라는 오직 로봇으로서 충실하게 그녀 어딘가에 심어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따라 다음 행동과 생각을 결정할 뿐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클라라가 성장을 도운 여자아이는(책 읽은 지 꽤 되어서 클라라 외에는 이름도 기억나질 않는다!) 어느새 대학으로 떠나고, 소임을 마무리한 클라라는 폐기 처분되어 폐기장에서 회로가 수명을 다해 끊어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클라라는 폐기장에 처박힌 채로 하늘을 관찰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폐기장에 '인간의 모습'으로 처박힌 클라라를 보며 처연하고 슬픈 것은 그녀를 읽는 독자의 몫일뿐이다. 


결국 우리가 인간인 것은, 독자로서 느끼는 이 모든 혼란 때문인 것은 아닐까.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애를 표현해주는 것은 아닐까.


클라라는 자신이 키우는 여자아이가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간이 보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통해 클라라는 태양이 충분히 그러한 역할, 기적을 일으켜 아이를 살려줄 수 있으리라고 믿고, 클라라가 아는 모든 한도 내에서 태양에게 최선을 다해,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를 살려주기를 기도한다. 


속절없이, 나날이 상태가 악화되어가던 아이는, 어느 날, 아주 찰나의 태양의 자비로,

기적같이 살아나고, 클라라는, 그리고 클라라를 도와준 이들은 그것이 클라라가 간절히 바란, 그리고 그 바람을 들어준 태양의 자비임을 모두 알고 있다.


클라라는 끝까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양은 자비롭게도 그녀의 바람을 들어 아이를 살려주었다.

인간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클라라이지만 태양을 향한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태양은 무심한 듯, 그러나 자비롭게 태양 한 줄기를 죽어가는 아이에게 떨궈 아이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했다는 것. 태양이 클라라의 소원을 들어준 그 순간만큼은 클라라는 모두에게 공평한 태양의 자비의 수혜자가 되었다. 


'인간'이 무엇인가?

태양이 부여한 그 '순간'- 클라라는 인간이었다고, 아니 인간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무언가 숭고한 존재였다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는 않을까.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클라라는 선함에 대한 믿음으로 그녀의 인간성을 증명해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던 클라라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해 보였다고, 그 인간성의 작은 조각을 만난 우리들이 그래서 폐기장에 처박혀있는 그녀를 애달파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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