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소름 끼치는 세상이다. 지난 1월 6일 실제로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극우주의자들을 본 후 시청한 훌루의 "핸드메이드 테일"은 이 세상이 실제가 될 수도 있다는 급박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 디스토피아를 세상의 누군가는 현재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세게 강타하며 알 수 없는 공포와 불편감,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훌루(Hulu)에 지난 2017년에 나왔고 주인공 오프레드/쥰(Offred/June) 역의 엘리자베스 모쓰가 여우주연상을 어디에선가 수상한 것을 포함, 여러 상을 수상한 명작인데, 여태 전혀 모르고 있다 우연히 시작했는데, 아주 빠져들어서 이틀간 달리고 있다. 이런 명작을 여태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렇게 끔찍한 세상이 사실은 아주 한 발짝 앞에서 실제로 날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쥰은 뉴욕에서 남편 닉과 딸 한나와 함께 사는 전형적인 힙스터이다. 대학 교육 이상을 받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며, 중산층 이상의 소득 수준을 가진, 우리가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사람 중 하나다. 그녀가 하는 대사 중에 "일찍 알아챘어야 했어. 그들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국회의사당을 공격했을 때, 헌법이 개정되었을 때, 우린 알아차렸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지난 1월 6일의 폭도들의 국회의사당 점거를 생중계로 봤던 충격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그녀의 그 뒤늦은 후회가 정말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쥰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는 미국은 2000년대의 가상의 국가 길리아드(Gilead)이다. 길리아드는 성경의 '길르앗'의 영어식 표기법이다. (현재 미국에서 소위 트럼프 지지자들로 대변되는) 극우주의자들이 쿠데타에 성공해 현재의 미국을 전복하고 새롭게 세운 나라로, 성경을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해 여성은 집에만 머물러야 하고, 어떠한 지위로 허락되지 않으며, 책을 읽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탈레반, 혹은 보코하람이 점령한 지역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전의 세상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에 다니며, 부르카가 아닌 정장을 입고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아내, 첩, 혹은 노예로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어 '아이를 낳는' 여성 본래의 의무(그들의 주장)에만 봉사하기를 강요받는 그 세상이, 이 드라마에서는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구현되었다. 뉴스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탈레반이나 보코하람의 이름이 마치 확성기를 통해 크게 확장되어 들리는 듯했다. 이 끔찍한 세상이 지금 그녀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맙소사.
환경오염으로 인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 가까운 미래의 가상국가 길리어드는 재혼녀, 이혼녀, 동성애자 등을 잡아들여 그중 건강한 아이를 낳을 있는 가임기 여성을 시녀로 만든다. 그런 후 지배계층의 집에 들여보내 그 집의 아이를 낳도록 한다. 이 기본 세팅에서 드라마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인간군상을 차근차근 읽어낸다. 매 에피소드는 숨 막히며 잔인하다. 이 시스템은 그 어느 누구도 이겨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공간.
그러나 무엇보다 공포스러웠던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적 절차와 그 정신에 누구보다도 자긍심이 강한 이 미국에서 일어난 극우 근본주의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고, 자신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아시안 이민자인 나에게 그 사건은, 내 생명과 직결되는,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 또한 바이든이 이번 선거에서 이긴 후 조지아를 비롯한 전통적 공화당 텃밭인 남부 몇몇 주들은 투표를 우편으로 보내는 법안을 폐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안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보통 젊은 사람들은 낮 동안에는 일을 해야 해서 투표장에 가지 않고 선거일 몇 주 전-며칠 전까지 메일로 자신들의 투표용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고, 보통 젊은 사람들은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그 젊은이들, 그리고 저소득층-흑인과 남미 계통 사람들-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쥰의 독백 중 "개구리는 한 번에 죽지 않는다.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라고 한다. 미국 내에서 헌법이 바뀌고, 계엄령이 선포되고, 여성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천천히 이루어져서, 쥰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독백이 내게는 현재에 대한 경고처럼 들리다니,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4년이 얼마나 끔찍했던 지에 대한 반증인 듯하다.
불법체류자들을 찾아다니는 아이스(ICE-불법 이민자들을 추포 하는 특별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민자들의 가정에 들이닥치고, 아이를 부모한테서 떼어내어 감옥을 개조한 공간에 밀어 넣고, 부모는 본국으로 송환해버렸다. 아이들이 어디에 수감되었는지 부모는 알 수가 없고, 아이들은 언제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다. 그들의 국가 '길리어드'는 마치 트럼프 행정부가 쿠데타에 성공해 일으킨 국가 같았다. 히틀러의 통치 기간 독일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당시 독일에 살던 유대인들은 '설마, 설마...'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치기에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스실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나갔을 때였다고 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가진 위험- 임신이 되지 않던 라헬이 자신의 언니 레아는 많은 자손을 가진 것을 보고 질투하여 남편 야곱에게 자신의 시녀 빌하를 들여보내 아이를 얻었던 것을 이 국가 '길리어드'에서는 그대로 해석하여 시녀들로 하여금 대신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며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빌 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약한 자들, 메타 내러티브에 희생된 잊힌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 "핸드메이드 테일"은 그 잊힌 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길리어드' 같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당부하는 초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