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poetic, you are an artist.
두 달이 넘도록 접속조차 하지 않은 브런치에서 60일이 넘도록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알림을 보내왔다. 알림을 받고도 한 달은 넘은 것 같은데, 우연히 짬이 나서 들어온 내 브런치의 마지막글은 암, 그럼 그렇지. 영어에 대한 글이다.
이번 주에는 엄청난 일이 있었다.
여전히 강단에 서서 메시지를 전한 날이었는데, 직업의 특성상, 그리고 계절의 특성상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손님들이 많이 오곤 한다. 그날도 메시지를 전하고 문을 나서던 길이었는데 문 앞에서 만난 낯선 신사가 나를 부른다. "Reverend?"
"Yes?" 하면서 마스크 너머의 얼굴을 살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반백의 머리를 점잖게 넘기고 모직의 체크무늬 사냥 모자를 멋있게 눌러쓴 멋진 신사분이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모자를 벗으신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모자를 벗으며 악수를 청하는 매너는 본 적이 없다. 특히나 그들의 눈에 서른으로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 보여주는 매너에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주의 깊게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나를 불러 세운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자신의 소개를 하는 신사분.
"나는 42년을 목사로 지내고 최근에 은퇴를 한 사람입니다. 뉴욕지역에 있었지요. 오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의 할아버지입니다."
아, 은퇴하신 목사님이시구나. 그의 단정하고도 세련된 옷차림과(모든 목사님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깔끔하고도 품격 있는 어휘 선택이나 정확한 발음 등이 이해가 되었다. 그날은 어린 두 남매의 세례식이 있는 날이었는데 아이들의 세례를 위해 참석했으니 옷차림에도 주의를 기울였을 것은 당연하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 신사분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42년을 목회를 했고,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오늘 당신의 설교는 one of the few (아주 특별한 정도로 해석하면 괜찮을까) 설교였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내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표현으로 이루어진 칭찬이라서, 영어로 그대로 옮겨야겠다.
"You are lyrical. You are poetic. You are an artist.
당신은 서정적이에요. 당신은 시적입니다. 예술가와도 같아요.
I was impressed. I was impressed.
인상 깊었어요. 매우.
Keep up the good work!"
앞으로도 쭉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말과 함께 그는 살짝 웃으며(마스크와 모자 사이의 그의 눈이 살짝 웃는다) 내 어깨에 살짝 손을 댄다.
나는 낯선 이로부터 받은 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칭찬에 말문이 막혀 오직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wow!"가 전부였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토록 아름다운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분의 성함을 물어보았다. 평생 기억하고 싶었다.
"I am Bob... Bob Emerick."
미국 사람들은 칭찬할 때 조금 더 구체적인 편이다. 만약 내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면 보통 정확하게 그 메시지에 대해서, 그 메시지의 특정 부분을 언급하면서 왜 좋았는지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그러니 보통 칭찬은, "오늘 네 메시지 정말 좋았어"나, "오늘 네 메시지에서 네가 언급한 그 이야기가 좋았어"와 같이 표현된다.
이 노신사의 칭찬이 더욱 아름답게 들렸던 까닭은, 그는 "너의 메시지"라고 말하지 않고, "너"에 대해서 이야기하셨기 때문이다. "너의 메시지가 서정적이었어"라고 표현하지 않고, "너는 서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아셨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걸. 어떻게 알았을까. 시처럼 들리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는 걸.
나는 하마터면, "내가 지금 내게 외국어인 언어로 메시지를 전한 걸 알고 있는 거 맞죠?"라고 확인할 뻔했다. (안 봐도 뻔히 안다. 내 강한 한국인 악센트를 놓칠 리가 없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그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메시지가 좋았다는 표현은 들었지만 왜인지 항상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영어 때문에 고생하며 한껏 쭈그러들며 현란하고 유창한 언어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며 다들 그저 으레 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분의 진심 어린, 심지어 감동마저 담긴 목소리를 통해 듣는 표현에서,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의 가치를 다시 발견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 이 미국땅에서,
이 낯선 언어에서,
나는 느리지만 그래도 나만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흘렀는데도 나는 아직도 기쁘다.
맘 같아선 밥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내 식사라도 같이 하고 평생 친구라도 하자고 말하고 싶은 판이다.
감사합니다, 밥.
앞으로의 갈 길이 먼데, 살짝 빛을 던져주셨어요. 길을 가다 고단하면 앉아서 당신과 이 언어들을 다시 기억하겠습니다. 정말 머리숙여 감사를 전합니다,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