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도 기적이라고 부르지
나는 이미 오래전에 영주권을 받았다. 학생비자로 미국에 와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많은 고생을 하지 않고 비자를 받았음에도, 이민국에서 날아온 영주권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종이 한 장의 무게와 맞바꾼 나의 그간의 고생이 허탈해서 영주권을 손에 쥔 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내 동생이 영주권을 받았다. 나와 같은 경로로, 학생비자로 와서 비자를 스폰서해 줄 회사를 만나서 영주권과 취업비자 신청자격요건을 갖추고, 올해 봄에 신청에 들어갔다. 보통은 2년, 혹은 그 이상 걸린다는 영주권 절차가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일하지 않아서 밀리고 쌓인 모든 신청서류를 9월까지 해결하라는 바이든 정부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탓에 몇 달도 채 걸리지 않고 나오게 된 것이다. (땡큐, 바이든)
동생은 나보다 조금 더 고생을 한 편이다. 나는 미국 기업 스폰서를 받아서 비교적 적은 변호사 비용과 그보다 더 적은 마음고생을 한 반면, 동생은 한국 회사에서 스폰서를 받아서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문화의(혹은 한국 이민사회의)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비자 과정을 진행했다. 이미 미국에 산 지 오래되어 미국 회사의 연봉 문화나 휴가 정책 등을 알고 있는 동생이 한국사람이 한국식 마인드로 운영하는 한국 회사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고 간사하다-
몇 해 전 영주권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 더 이상 내가 이 땅에 '임시'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주는 안도감. 내가 몇 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살아갈 땅에 내가 마침내 "적절한 법률 제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는 평화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강력한 안정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것을 알기에, 동생의 영주권 소식은 아 얘도 이제 한 고비를 넘겼구나 싶은 느낌, 말하자면 강력한 안정제를 다시 한번 더 맞은 느낌을 준다.
동생은 이제 모기지를 써서 집을 살 수도 있고,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도 있으며(비자 법률이 복잡하지만, 학생비자로 와서 공부하는 동안 만료된 탓에 합법적인 신분이기는 했으나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 수는 없었다), 더 이상 한국 회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회사로 옮겨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미 한 미국 회사에서 시니어로 취업 합격이 된 터라 그 회사에 가도 된다. 합격했음에도 영주권이 없어서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회사가 기다려 주겠다고까지 했던 터였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주는 자유의 무게는 때로 이처럼 어마어마하다. 아마 지금 동생은 숨 쉬는 공기에서도 영주권의 자유를 냄새 맡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이.
영주권, 받아보면 참 별것 아닌 그것이 주는 이 어마어마한 자유.
아마도, 이방인으로서, 비록 나는 피부색과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쓰지만 나도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지 않을까.
앞으로가 어떨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지금, 오늘 하루는 이 자유를, 종이 한 장이 주는 엄청난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기로 한다. 샴페인을 터트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