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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ug 06. 2022

영주권이 나오다!

이런 일도 기적이라고 부르지

나는 이미 오래전에 영주권을 받았다. 학생비자로 미국에 와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많은 고생을 하지 않고 비자를 받았음에도, 이민국에서 날아온 영주권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종이 한 장의 무게와 맞바꾼 나의 그간의 고생이 허탈해서 영주권을 손에 쥔 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내 동생이 영주권을 받았다. 나와 같은 경로로, 학생비자로 와서 비자를 스폰서해 줄 회사를 만나서 영주권과 취업비자 신청자격요건을 갖추고, 올해 봄에 신청에 들어갔다. 보통은 2년, 혹은 그 이상 걸린다는 영주권 절차가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일하지 않아서 밀리고 쌓인 모든 신청서류를 9월까지 해결하라는 바이든 정부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탓에 몇 달도 채 걸리지 않고 나오게 된 것이다. (땡큐, 바이든)


동생은 나보다 조금 더 고생을 한 편이다. 나는 미국 기업 스폰서를 받아서 비교적 적은 변호사 비용과 그보다 더 적은 마음고생을 한 반면, 동생은 한국 회사에서 스폰서를 받아서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문화의(혹은 한국 이민사회의)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비자 과정을 진행했다. 이미 미국에 산 지 오래되어 미국 회사의 연봉 문화나 휴가 정책 등을 알고 있는 동생이 한국사람이 한국식 마인드로 운영하는 한국 회사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고 간사하다-


몇 해 전 영주권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 더 이상 내가 이 땅에 '임시'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주는 안도감. 내가 몇 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살아갈 땅에 내가 마침내 "적절한 법률 제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는 평화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강력한 안정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것을 알기에, 동생의 영주권 소식은 아 얘도 이제 한 고비를 넘겼구나 싶은 느낌, 말하자면 강력한 안정제를 다시 한번 더 맞은 느낌을 준다.

동생은 이제 모기지를 써서 집을 살 수도 있고,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도 있으며(비자 법률이 복잡하지만, 학생비자로 와서 공부하는 동안 만료된 탓에 합법적인 신분이기는 했으나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 수는 없었다), 더 이상 한국 회사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회사로 옮겨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미 한 미국 회사에서 시니어로 취업 합격이 된 터라 그 회사에 가도 된다. 합격했음에도 영주권이 없어서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회사가 기다려 주겠다고까지 했던 터였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주는 자유의 무게는 때로 이처럼 어마어마하다. 아마 지금 동생은 숨 쉬는 공기에서도 영주권의 자유를 냄새 맡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듯이.


영주권, 받아보면 참 별것 아닌 그것이 주는 이 어마어마한 자유. 

아마도, 이방인으로서, 비록 나는 피부색과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쓰지만 나도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지 않을까.


앞으로가 어떨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지금, 오늘 하루는 이 자유를, 종이 한 장이 주는 엄청난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기로 한다. 샴페인을 터트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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