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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ug 10. 2022

뉴욕 뉴욕

그리니치 + 스퀘어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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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일이 아니었는데 남자 친구 가족 이벤트가 있어서 마지막에 부랴부랴 티켓을 끊고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날아갔다. 뉴욕은 몇 번 가보았지만 친구 집에 들르거나 컨퍼런스 참석 차 간 게 전부라 브로드웨이나 센트럴 파크를 가본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싶게 여행을 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주말을 빌려 짧게 가족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간 터라 여행은 무리였으나 뉴욕에서 나고 자란 남자 친구의 배려로 토요일 아침 살짝 가보고 싶었던 곳을 돌아보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포스터에 등장해서 유명해지고, 한국에서는 무한도전이 달력 촬영을 하는 바람에 더 유명해진 덤보를 들르고, 그다음으로는 아티스트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Greenwich엘 들렀다. 그리고 그리니치의 모퉁이에 스퀘어 파크가 있는 모양새였다.


시카고도 시끄럽고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는 대도시지만 뉴욕은 차원이 다르다. 시카고의 혼돈은 그나마 중간중간 숨을 내쉴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면 뉴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혼돈의 쓰나미는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싶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 나는 내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구글맵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고 난삽한 길들, 아마도 여행객이 대다수를 차지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 길거리에 깔린 좌판, 이 모든 것이 감각을 마비시킬 만큼 혼란스러우면서도, 나는 동시에 눈부신 여름 햇살과 어울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허드슨 리버, 바다, 그리고 건물들을 보며 떨림을 느끼고있었다.


그리고 작고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 만난 워싱턴스퀘어 공원, 그리고 공원에서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가져와 피아노를 치는 저 키 큰 청년을 보면서, 그제야 '아, 내가 그래서 뉴욕이 아름답게 느껴졌구나' 싶었다. 이 작은 공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그 한가운데 피아노를 가져다 두고 재즈와 클래식을 번갈아 연주하는 청년의 뒷모습이 내가 시카고에서 볼 수 없는 모습임을 깨달았다. '이 느낌'이 시카고에 없는 거였구나. 청량하게 쏟아지는, 비 온 뒤 갠 하늘의 맑은 햇살은 여름잎사귀들을 통과하며 내 목덜미를 따뜻하게 어루만졌고, 나는 피아노를 치는 청년의 뒤쪽에 앉아서 워싱턴 스퀘어 가든의 공기와, 사람들과, 청년의 음악을 폐로 깊숙이 호흡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어째서 내가 뉴욕을 좀 더 즐길 수 있었는가는 나중에 누군가가 뉴욕이 어떤 정책으로 길의 노숙자를 모두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뉴욕을 돌아보며 하루를 즐기고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뉴욕 돌아보니 어땠는지를 물으며, 몇 해 전에 뉴욕시장이 길거리의 노숙자를 모두 쫓아냈기 때문에 아마 여행이 조금 더 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니 나는 그 하루 노숙자를 만난 기억이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부딪히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조심하며 걸었는데, 그 거대한 도시에 노숙자가 없다니- 충격이었다. 

시카고는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해 동안 미국의 경제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면서 도시를 가득 채우는 노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같이 따뜻한 계절에는 모퉁이마다 노숙자들이 서있고, 노숙자로 인한 혐오범죄나 폭력사건들이 왕왕 발생한다. 도시 한가운데 사는 터라 차를 이용하기보다 주로 걷는 편인 나는 항상 안전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나는 노숙자를 보지 못했다. 

노숙자 없는 거리는 편하긴 하다. 덜 위험하게 느껴지고, 조금 더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인적인 집값을 자랑하는 이 도시에 집 없는 이가 없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예상치 못한, 뉴욕의 낭만적인 길거리는, 노숙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오늘같이 더위가 한풀 꺾이고 공기에서 가을의 냄새가 갑자기 풍기기 시작하는 날은,

저런 공원에 앉아서 잠시 망중한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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