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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ug 18. 2022

오해받을 용기

어쩌면 자신감, 아니면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는 그것

살다 보면 내가 나를 자꾸만 '을'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을 발견한다.

갑이나 을이 없어야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나를 '을'에 놓고, 그것이 더욱 편안하다.

일 때문에 주고받는 이메일에서도 답을 짧게 해서 상대가 오해하지는 않을까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른 다음에 고민한다. 나는 제대로 의사표현을 했는데 내 이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은 상대가 문제인 것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답하는 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까지 내 몫이어야 한다고 누가 대체 말했나.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싶어서 머릿속으로 전전긍긍해한다.

그러고 나서야

아, 나는 오해받을 용기도 없는 사람이로구나.

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오해하든 말든 그건 상대의 문제로 치부할  아는 어쩌면,

자신감, 혹은 심지어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도는 듯이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상대가 오해하는 것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 (테슬라 일론 머스크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인가).




괜히 머릿속으로 시끄럽고 부산하게 '혹시 오해했으면 어뜨카지...?'를 굴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냥 훌훌 털어버리기로 결정한다.

오해해도 괜찮아. 나는 이메일에 모든 것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술했어. 제대로 안 읽은 니 탓이다.

나는 너와 동등하고 대등하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 조금 낮은 자리에 굽신거리며 서서 너한테 숟가락으로 모든 정보와 사실을 퍼먹여주며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누가 그런 사람이 있대? (있어야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나를 올려보아야 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낮아지고,

내가 웬만해서 자꾸 올려다보려 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내 어깨를 먼저 토닥거려주자.

당신들이 비록 나보다 (어깨가 조금 높더라도)

나라도 내 어깨를 먼저 도닥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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