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솦 솦 Aug 27. 2022

봄날의 햇살 최수연

머찐 그녀



봄날의 햇살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시간이 좀 남아서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잘 알지 못하는 젊은 남자 청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귀여운 얼굴에 선명한 파란색 뿔테를 껴서 눈에 유난히 잘 띄는 사람이었다.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내 앞자리가 비자 그 청년은 커피를 들고 앞자리에 앉았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구만.'

이라고 생각을 하고 반갑게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했다. 


데이빗이라고 자기 이름을 밝힌 그 청년은 쉼표 하나 없이 어느샌가 다니는 학교와 전공과 부모님 직업과 고향과 동생의 전공과 사는 곳과 현재 자신이 관심 있게 읽고 있는 책까지 나한테 말해주었다. 

그런데 꽤나 재미있어서 나는 '오'하면서 재미있게 들었다. 그러나 같은 테이블의 다른 사람은 재미가 없었는지 가볼 데가 있다며 주섬주섬 자리를 일어나 떠나버렸다.


무언가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같은 스탭 하나가 지난주에 새로 온 젊은 청년이 있는데 오자마자 자기가 disability(장애)가 있다고 다짜고짜 이야기했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청년이 이 데이빗인 듯했다.

 

'아, 혹시 자폐성 스펙트럼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매우 좋은 기억력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도 한다던 장애가 조금 더 알려지게 된 듯하다. 나도, 우리 이쁜 영우가 아니었더라면 데이비드를 '이야 진짜 말 많이 하는 귀엽게 생긴 친굴세' 정도로만 생각을 했을 듯도 하다. 어쨌든 5분 안에 수많은 정보를 쏟아놓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말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요 녀석 보게, 자신이 읽은 책과 철학, 신학, 역사를 넘나들며 정보를 나누어주던 그 청년은 급기야 나에게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이러면서 최신 페미니즘 이론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가.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다"에서 기분이 매우 상했다.)

참고로 집에 와서 그 친구가 쏟아낸 그 '넌 잘 모를 수도 있는 페미니즘' 이론을 온라인으로 검색해봤는데 안 나왔다. 다음에 다시 오면 정식 이름을 물어봐야지. 정말로 난 잘 모르긴 했다. 하여튼 그 때 내 반응은 

'아쭈, 요 녀석 봐라' 정도였던 듯하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회의 시간이 다가와서 양해를 구하고 일어서서 회의 장소로 이동했는데 데이비드가 따라와선 내게 그제야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오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사실은 내가 autism이 있거든. 그래서 가끔 혼자만 이야기하는데, 내가 autism이 있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더라고."


아, 이래서 우리 이쁜 우영우가 첫 재판에서 자신이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소개를 하는 것이었구나.


"너 허그하니?"라고 묻자 "응"이라고 답하길래

안아주며, "괜찮아. 나는 즐거웠어"라고 답해주었다. 




어쨌든

그 친구의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다'에 괜히 기분이 상한 나를 보면서,

갑자기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석 변호사야 14년 선배였던 탓에 똘똘하고 대견한 영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따스히 바라볼 수 있는 조금의 공간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 권모술수 권민우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지점에 있는, 불안정한 고용으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이다. 영우와 같은 레이스를 달리지만 전혀 같은 레이스를 달릴 수 없는, 어느 회차에선가 권민우가 말했듯 '우리가 항상 돌봐야 하지만 우리가 항상 지는 게임'을 영우와 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영우처럼 사진으로 찍은 듯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역사와 신학, 철학과 페미니즘을 넘나들던 그의 이야기에서 그는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연도나, 책의 출판 세부 사항, 아무도 알지 못할 것 같은 단어들을 나열해서 정보를 늘어놓았다.

마흔이 넘어가며 내가 머리를 왜 달고 있는지 조차 가끔 잊는 나에게 그의 기억력은 경이로울 정도였고, 

아주 부러웠다. '어 부러워...' 하는 그 마음이 그의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다"를 통해 상한 빈정으로 나타난 것이었을 테지.


오늘 처음 만나 한 시간여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무서운 기억력에 빈정을 느끼는 것이 인간인데,

현실에서 영우를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에게 박탈감을 느껴야 했던 최수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우에게 봄날의 햇살 같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가장 허구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듯하다.


담주에 그 청년 다시 만나면 그 기분 상한 페미니즘 이론 이름이나 다시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그래도 봄날의 햇살 최수연 덕에 상한 빈정을 간신히 붙잡긴 했다. 드라마의 참된 순기능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해받을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