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팬 중 의외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그의 글에 빠져든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꽤 있다. 얼마 전에도 한 작가의 글에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읽었다. 나 또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홀딱 빠져서 그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 내가 하루키의 팬이 되겠다고 결심한, 혹은 나를 홀딱 빠져들게 한 그 에세이의 제목도 아직 기억하는데,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이다. (제목마저 귀엽다.)
지금 찾아보니 아예 이 제목으로 하루키의 에세이들이 엮여 나온 문고판 책도 있는 것 같다. 내 때는- 그러니까 내가 그의 에세이를 처음 읽은 시점에는- 이런 제목의 책은 없었는데. 이 글은 여전히 내가 읽은 수필들 중 가장 재치있고 재기 넘치는, 짜릿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글이다. 내 기억엔 그 글을 읽으며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약간 소리마저 질렀던 것 같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살짝 꺄악.. 요 정도?
하루키라는 거대한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약간은 변태스러운, 노인네 같이 능청스러운 그의 재기 넘치는 말투에 아주 빠져 버렸던 거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초반이었거나.) 점잖은 척, 예술가인 척 하지 않고 뭔가 은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독자들에게 (약간은 변태스럽게) 전하는 그의 글쓰기에 마치 방금 그와 귓속말로 (변태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글이었다. 뭔가 모닥불 근처에 모여 앉아서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로 서로 숙덕거리는 느낌이랄까? 하루키와 변태스럽게 대화한 기분이 들게 한달까?
세일러복을 입은 4B 연필이 "어머 만지지 마세요!"하며 하루키의 상상 속에서 앙탈을 부리는 부분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고 내 나름 자부하기는 한다. 아닌가? 그 수필을 읽은 후 꽤 오랫동안 노란색 4B 연필만 보면 왠지 새초롬한 아가씨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되서 나 혼자 실실 웃기도 꽤 했었다.
어쨌든 내 요지는- 하루키의 수필을 보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 이전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키를 읽고는 작가로 잠깐 전향했었다.
'글쓰기'는 내게 일종의 '빨간 청어' 같은 존재이다. "빨간 청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 실려있는 1980년대 하루키가 쓴 에세이 중 한 편의 제목이다.
한국어에도 일본어에도 없는 '빨간 청어'라는 표현은 영국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표현으로, 여우 사냥에 쓰이던 사냥개들을 훈련시킬 때 청어 냄새로 유혹했던 것에서 비롯되어 쓰이는 표현이란다. 하루키의 표현으로는 "빨간 청어=목적에서 일탈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것"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글을 잘 써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글은 항상 좋아했지만, 글로 먹고 살 생각은 해본 적도, 감히 할 생각도 없었다. 여러 가지 직업군 중에서 장래 희망을 적을 때, 혹은 진지하게 내 적성과 미래의 적용가능성에 맞춰 생각해 보았을 때, 작가는 매력적이나 배가 고픈 직군이었고, 배 고픈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에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 살기 시작하고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생활하게 되면서, 한국어는 내게 거의 '사어(死語)'가 되어갔다. 쓰지 않으니 모국어마저도 퇴화한다. 먹고 살기 위해 외국어를 더 쓴 탓도 있겠지. 한 번은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한국말로 몇 시간 강연 비슷한 것을 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대체 말을 어디서 끊어야 하고 어디서 매듭지어야 하는 줄을 알 수가 없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던 적도 있다. 한국말로 강연을 다니고, 설교하던 사람이 이러니 어찌나 허망하던지. 평소라면 신중하겠노라고 생각해 절대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진짜 아무 말로 대잔치를 했다. 진짜 죽고 싶었다.
그 후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어로 된 책들을 온라인에서 한국으로부터 배송받아 읽기 시작했다. 소설책들, 시집, 수필집들을 읽다 보니, 이제는 짧게라도 글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또 그러다 보니, 이왕 쓰는 것 조금 더 '정돈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내 삶이라는 프레임에서 이 '정돈된 글'에 대한 욕망은 사실 '빨간 훈제 청어' 같은 존재다. 너무 매력적이라 새빨간 하이힐을 신은 진짜 매력적인 청어 한 마리 같이 보이기도 하고, 너무 도전해보고 싶어서, 아니 도전해 보고 싶은데 왠지 닿지도 못할 것 같은 신기루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내 삶이라는 프레임에 전혀 상관없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카테고리에도 들어맞기에, 역시 글쓰기는 내게 '빨간 청어'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비우고,
그저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 채우겠다고 생각하면,
글쓰기는 '빨간 청어'의 위치에서 아주 약간은 벗어날 수 있다.
이왕 쓰는 글이라면 마구잡이로 감정의 흐름을 따라 쓰곤 하는 일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글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면,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공포 넘치는 압박감에서도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아마추어라,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이렇게 하루의 끝, 세상이 깊게 잠든 것 같은 한밤중에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꽤 괜찮은 선물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만화가나 작가나, 무언가를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다. 어린 나는 '표현의 욕구'가 있었던 것일까? 뭐- 지금이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 볼까 한다. 청어 저림은 꽤 맛있단다. 하루키 말로는. 난 청어가 무슨 물고기인지조차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이토록 매력적인 빨간 청어같은 글쓰기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나를 읽고,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