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ait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솦 솦 Jan 22. 2023

있는 모습 그대로

the authentic, God-ordaind yourself

성경을 몰라도 아마 많이들 알지 않을까. 

예수께서 처음 부르신 제자들은 갈릴리라는 동네의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들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신 부분을 알려주는 마태복음의 4번째 장은 독특하게 시작하는데, 

이는 예수가 세례주는 요한이 잡혀간 것을 듣자마자 갈릴리로 이사를 가셨다고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근데 대체 왜?


그는 방금 사막에서 40일 금식을 끝내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후 간신히 집에 돌아온 터였다. 뜨거운 낯과 얼음처럼 차가운 밤을 교대로 마흔 번을 지나고, 너덜너덜한 몸이었을 텐데. 그런 몸으로 자기에게 세례를 준 요한이 잡혀가자마자 요한을 잡아간 헤롯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으로 이사를 가다니. 사자굴에 직접 들어가는 예수님. 몸도 제대로 성치 않았을 텐데 그는 왜 평생 나고 자란 나사렛을 떠나 낯선 이방인의 땅이라고 불리던, 그리고 어두움의 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 동네로 가셨던 걸까.


그의 이 결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유명한 예수님의 말씀은 

영어로는 "Come and follow me.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이다. 

어부들에게 계속 어부의 일을 하되, 다만 사람들을 향하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예수님. 


어릴 적 교회에서 듣던 메시지는 '자 지금 나가 전도(사람을 낚는 거니까) 합시다'였다. 부끄럼 많고 낯을 과하게 가리는 내 성격에 대체 지금 당장 바깥에 나가서 휴지라도 한 개씩 나누어주며, 길거리에서 노래라도 부르며 뭘 하라는 강력한 '낚아라' 메시지는 무언가, 내가 정말 하기 힘든 일이었다.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거지. 대체 왜 자꾸 나가라는 거냐.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은 어부들에게 '다른 무언가'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더랬다. 그저 어부더러 계속 어부를 하라고 하셨다. 

어부에게 난데없이 랍비나 선생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만약 예수께서 지금 내게 오신다면 낯 많이 가리는 내게 말발 좋고 목소리 큰 전도자가 되라고 하지 않으실 것 같다. 그냥 계속 열심히 '나 자신'이 되라고 하실 것 같은데. 그럼 나도 부끄럼 없이 더욱 부끄러워하며, 낯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욱 열심히 낯을 가리며 내가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더욱 잘 따르겠지.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았다. 너무 좋아서 아예 아마존 프라임에서 영화를 사 버렸다. 이렇게 웃긴 영화는 정말 짐 캐리 이후로 오랜만이다. 



 에블린은 현재의 삶이 지겹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남편과 딸이, 아버지와 망해가는 코인세탁소 사업이 버겁기만 하다. 그녀 주위 모든 사람도 그녀의 부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함께 힘들어한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메타버스에서 수많은 다른 버전의 자기 자신을 만나면서, -멋진 영화배우나 경극가수 등등- 한때 다른 버전의 에블린들을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난잡한) 여정을 거친 후 마침내 깨닫는 것은 그 모든 잘난 다른 에블린들이 아니고,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 자기 딸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과, 딸 조이를 구해낸다. 


내가 영화배우였다면, 내가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수많은 선택과 그때 그녀가 선택한 결과로 만들어낸 현재의 에블린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에블린인 것이다.


결국은 진실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아마도 예수께서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면서 하신 말씀인 것 같다.

"나를 따르렴. 내가 너로 하여금 더욱더 참된 너 자신이 되게 해 줄게."


나는 살면서 참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내가 만약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좋은 기회를 어쩌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조바심 가득한 질문들. 

혹은 나는 왜 아직도 이것밖에 못하지 등과 같은 수많은 자격지심의 채찍질도 서슴지 않고 내게 던진다.


그러나, 결국 예수께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다. 지금 이 모습이 ENOUGH 하다고.


아.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구나. 어부는 어부가 되고, 랍비는 랍비가 되며, 목사는 목사가, 나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참된 예수님의 부르심인 것을.

왜인지 그동안 아등바등하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 필요 없는 버둥거림인 것을.


마음이 잠깐 평화로워진다. 

이 글을 잠깐 읽은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Via Negativa, 부정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