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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an 22. 2024

시카고 사는 목사

다른 문화 속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야기

인스타그램 @erikmarthaler

시카고 다운타운 한가운데에는 데일리 플라자라는 작은 공간이 있다. 바로 앞에 시청과 법원이 위치해 있고, 사진에 보이는 미로의 조각품이 있는, 여러 종류의 데모가 자주 벌어지고 각종 행사도 열린다. 여름에는 지역의 싱싱한 야채와 과일 등을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과 겨울에는 크라이스트킨들마켓(유러피안/로컬 크리스마스 장식품과 먹을거리 등을 파는 마켓)이 열린다. 


나는 사진 속 미로의 조각 뒤로 보이는 첨탑이 뾰족한 교회의 목사이다. 며칠 전 인스타에 올라온 이 사진은 시카고의 배트맨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와 겨울 눈폭풍이 주는 살벌한 풍경을 참 잘 표현했다. 1월의 시카고는 매우 추운데 올해는 특히 잔인하다.  몇십 인치의 눈이 매서운 눈폭풍과 함께 며칠을 지치지 않고 찾아들었고, 사람들은 집안에 발이 묶인 채 지내야 했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이런 혹한에는 바깥에 30분만 있어도 폐가 상한다. 이런 툰드라 같은 지역에 사람이 사는 것이 14년을 내리 이곳에 살았으면서도 매년 겨울마다 새삼스럽게 놀라고는 한다. 


내가 일하는 교회는 200년 된 교회로 시카고 도시가 생기기 전에 교회가 먼저 들어섰다. 동부에서부터 개척자들이 서부로, 서부로를 외치며 몰려오던 시절 시카고가 아직 작은 타운이었을 때 시카고 강 둔턱에 개척자 몇 명이 모여서 시작한 작은 통나무 교회가 여태껏 이어져 와 지금은 다운타운 한가운데 고층빌딩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교회가 되었다. 27층 높이의 빌딩에서 교회는 지하-4층까지만 사용하고 그 이후의 대부분의 공간은 시청과 법원에 가까운 위치적 특성 탓에 변호사나 NGO 단체들이 입주해 있다. 


첨탑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예배공간'인 스카이채플이 있는데 미국에서 약품판매회사로 유명한 월그린(The Walgreens) 가족이 헌납한 예배공간이다. 창업자인 조지 월그린이 오래전 이 교회 멤버였다는 듯하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가 이 채플을 그의 이름으로 짓기를 원했고, 그래서 예정에 없던 작은 채플이 27층 고층빌딩 꼭대기에 올라섰다.


스카이채플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작고 아름다운 공간인데, 한 번은 스무 명 정도만 초대된 작은 결혼식을 이곳에서 주례한 적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조명이 어두운 이 작은 채플을 온통 촛불로 밝히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결혼이었다. 신랑은 정신과 의사인 한국인 2세였고, 신부는 책 출판을 하는 멋진 페미니스트 백인 아가씨였다. 춤을 추며 입장하는 커플은 사랑스러웠고, 결혼예식은 친밀하고 달콤했으며, 하객들은 마치 가족 같았다. 비록 LED였지만 일렁이는(일렁이는 듯이 보이는 그런 촛불) 촛불 사이로 흐르는 테일러 스위프트는 더욱 다정했다. 참고로 그 결혼식 이후로 나는 스몰웨딩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결혼의 모든 과정이 의미 깊을 이들만 참여하는 결혼은 그 농도가 깊고, 진하다.

다정한 촛불과 테일러 스위프트로 이루어진 결혼식
첼시와 다니엘 https://chelsea-daniel.emmazanger.com



나는 극 내향형이다. 미국에서 유학과 이민생활을 하면서 내향형인 성격은 더욱 짙어졌다. 내 땅이 아닌 곳에서 내 사람이 아닌 듯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극단적인 내향형인 사람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모국이 아닌 땅에서 살며 나와 생김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목사는 결국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지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이 창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그 무언가를 사랑한다. 그래서 낯선 이와 한번 점심을 먹으려면 며칠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면서도 나는 기꺼이 잘 모르는 이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브런치를 먹으며 그들을 알아갈 용기를 낸다. 한번 낯선 이와 식사를 하면 한나절은 누워야 할 만큼 기가 빨리지만 빨리는 기 만큼 채워지는 마음의 공간도 크다. 사람은 기본적으로(예외도 있음을 명시하는 바이다), 아름답다. 


월그린처럼 유명한 기업의 사장부터, 길에서 잠을 청한 지 수십 년이 되어가는 노숙자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고 자신들의 교회라고 부른다. 백인 흑인, 아시안, 멕시칸... 모든 인종이 이 교회를 사랑한다. 노숙자도, 변호사도, 온몸이 타투로 덮인 사람도,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도,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싱글도, 커플도, 모두 환영받는 교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버블로 이루어진 '구역'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짓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다양함을 자랑하는 이 공간을, 사랑한다. 하이엔드 변호사와 홈리스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십여 년 전 한국에서 온, 강한 악센트의 영어를 쓰는 내가 목사로 어우러질 수 있는 이 포용성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만나고 지나치는 그 수많은 이들과의 조우를 사랑한다.


사람만큼 재미있는 공간이 어디 있을까. 지난 5년간 이 교회에서 만나고 친구가 된, 만나고 헤어진, 만나고 가족이 된 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작은 우주가 하나하나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그 하나하나 우주에 경외심을 담아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그 우주를 살아낸 그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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