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연애하기

모공까지 미운 날

by 솦 솦
그린빈.jpg 모공도 없는 것이 모공도 미워하는 이 한심한 완두콩이

밉고 못나게 행동해놓고선,

그렇게 행동한 나를 너무 잘 안다.

이불 덮고 킥 차는 건 기본이고,

가끔은 내가 나를 차고 싶다.


가끔 남들에겐 부처님 오신 듯 자비로운 내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자신에게는

커터칼로 협박하듯 앞으로 걸어가라고 밀어낼 때가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 조프리가 산사를 말로 위협할 때

성벽 외다른 길에서 떨어질까? 하는 듯한 눈빛으로 길 아래를 내려다보던 산사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협박당해 낭떠러지를 걷는 기분으로

서걱서걱 소리 나도록 후벼 파 댄다.


내 안에 두 인격이 있는 셈이지.

어떻게 해야 상대를 상처입힐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조프리와,

아직 어째야 할 줄을 몰라 그 말에 상처 입고 맘껏 자존감도 함께 깎는 산사.


어린 초록이 상큼한 완두콩이 자신의 대칭이 완벽한 동그란 알을 탓하는 것,

사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웃긴가.


우리가 보기엔 그 싱그러운 초록에 쌓인 세상에 막 태어난 듯한 여린 얼굴을 한

완두가 이쁘기만 하고만.


그러니 때로는 우리는 우리가 남에게 어질듯이

우리 자신에게도 어질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듯이 두 눈 길고 가늘게 뜨고

까짓거 꽤나 괜찮구먼. 사람이 길고 가늘게 살며 실수할 수도 있지, 하며

남들에게 인심 크게 쓰는 후한 사람처럼,

나 자신에게도 마음을 크게 써줘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인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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