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는 순간

다운튼 애비를 보다가

by 솦 솦
mast-da-s6-ep7-best-lines-07.jpg 출처: PBS website


영국 PBS 드라마인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를 여태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존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보기 시작했다. 요크(York)에서 가까운 지역인 동네에 있는 다운튼 애비라는 큰 성에 살고 있는 귀족 가족과 그들을 섬기는 하인들의 이야기. 1차 세계대전 전과 이후가 배경으로 빠르게 바뀌고 발전하는 환경에서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아름다운 의상과 고성, 당시의 클래식 자동차들이 굉장한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도 찰지게 매우 재미있다. 영국식 막장드라마라고 누군가가 소개했던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의 막돼먹은 이야기가 가장 알맞은 소개인듯하다.


드디어 마지막 시즌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다. 시즌 1화에서 이 집의 하녀였던 그웬은 시즌 7화에서 여자대학을 후원하는 후원자로 등장한다. 시즌 1화에서 하녀로서의 삶이 싫어서 무턱대고 한 회사의 경리로 취업해서 집을 떠나면서 드라마에서 하차했는데 갑자기 시즌 7에서 돌아왔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영국은 아직도 그렇다고 하긴 하다마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흙수저도 노력하면 계급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 존재이다.(물론 혼자서 일구어낸 성과는 아니고 사업가인 남편을 만나서 그렇게 됐다는 부연설명이 있기는 하다마는) 그웬은 자신이 배우지 못해서 되고 싶은 무엇가가 되지 못한 것이 서러워서 여대생들을 후원한다. 물론 세상의 변화를 대표하는 존재랄까? 여담으로 <왕좌의 게임>에서 북쪽을 지배하는 존 스노우의 첫 번째 여자 친구로 나왔던 그녀이다. (실제로도 둘이 결혼했다.)


이 집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둘째 이디스(Edith)는 사랑하던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잡지사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녀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하는 당시의 남성 에디터들에 질려서 다 해고해버리고(사이다) 여성 에디터를 고용해 아주 재미있게 일을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이디스가 일을 한다고 새파랗게 질리던 아버지 로버트는 이제 이디스가 세상을 바꿀 사람들 중 하나인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한다. 세상은 변하고, 모든 사람도 변한다. 이디스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서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다운튼 애비의 막내 요리사인 데이지는 가장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한 인물이다. 부모 없이 태어나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 없던 데이지는 드라마 초반에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철이 없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캐릭터로 바뀌어간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를 통해 자기가 자신의 삶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미 그려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희열. 데이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철이 없지만, 철은 진짜 끝까지 없지만, 그 욕심이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감동을 추구하는 드라마는 아니라서 감동을 강제로 받게 하지는 않는다. 중요 등장인물들이 마치 <왕좌의 게임>처럼 마구 죽어나가는 통에 중간에 포기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다행히 스토리의 찰짐(?)이 곧 돌아와서 다행히 인내하며 보고 있는 중이다.




막내 요리사 데이지가 독학하며 고전할 때 몰슬리 씨가 도와주겠다고 자청을 한다. 반색을 하며 데이지가 "저는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뒀어요. 몰슬리 씨는요?"하고 묻자 몰슬리 씨는 겸연쩍어하면서 "나는 사실 열두 살에 그만뒀어. 어머니가 아프셔서 돈을 벌어야 했거든.""라고 답을 한다. 데이지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몰슬씨씨도 도진개진인데요?"라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몰슬씨는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내가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둬서 수학은 못 도와주겠지만 그래도 역사나 철학 같은 건 도와줄 수 있어. 배우고 싶어서 혼자서 책을 읽어왔거든" 그렇게 겸연쩍게 대답하는 몰슬리 씨.



그렇게 몰슬리 씨는 데이지에게 책도 빌려주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데려가면서 정성껏 도와준다. 데이지와 따로 앉아서 유럽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들도 꾸준히 삽입된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건가 했는데, 몰슬리 씨는 데이지가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랐고, 마을 학교 선생님을 만나 데이지가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주선을 한다. 자신 없어하는 데이지를 격려해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몰슬리 씨. 자신에게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 데이지가 묻자 몰슬리 씨는 "나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못된 것이 아쉬웠거든. 그렇지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더 많은 기회가 있어. 그래서 도와주고 싶어."라고 대답을 한다.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눈을 들지 못한 채 이야기하는 몰슬리 씨.



그렇게 시험을 본 후 며칠이 지나 오늘 에피소드에서 학교 선생님이 다운튼 애비로 직접 찾아오셨다. 긴장한 얼굴로 선생님을 맞이하는 몰슬리 씨. 학교 선생님은 그에게 "몰슬리 씨의 지식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를 나온 사람들 중에서도 몰슬리 씨보다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디 저희 학교에서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지도해주십시오."라는 놀라운 찬사를 한다. 눈물이 고이는 몰슬리 씨와 기뻐하는 다운튼 애비의 식구들. 드라마를 보며 함께 눈물이 나는 나.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몰슬리 씨. 그리고 학교 선생님은 떠나고, 데이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학교로 갈 거예요?"라고 데이지가 묻자 몰슬리 씨는 "가야지. 나는 어쩌면 여태 잘못 살아온 걸지도 모르겠어."(위의 화면에 있는 대사)라고 답한다. 배우지 못해서 어린 나이에 가장 직급이 낮은 하인으로 다운튼 애비에 들어와서 이제 first footman(뭔지 모르지만 가장 낮은 직급 중 그나마 높은 하인인 듯)인 그가 독학으로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읽은 책의 양과 노력, 이 모든 것들이 가장 다운튼 애비 답게, 수선스럽지 않지만 가장 찬란하게 되갚아졌다.


잘 생긴 외모가 아니라서 짝사랑하고 있는 백스터에게 내색도 못하고 키다리 아저씨처럼 도와만 주고 있는 이 양반. 눈치가 없어서 여러 번 핀잔을 듣고도 듣고 있는 게 핀잔 인지도 잘 모르는 이 안타까운 양반. 열두 살에 어머니가 아파서 공부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했고,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하인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여태 다운튼 애비를 떠날 수도 없었던 이 양반이 그동안 소리 없이 밤마다 조금씩 모든 지식으로 학교의 선생님이 된다. 전율이 이는 감동적인 오페라를 본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오랫동안 이어지는 박수갈채를 쳐 드리고 싶은 몰슬리 씨. 삶에 작은 승리가 있다면 이런 기적 같은 승리이지 않을까. 남들 눈에는 티끌만큼 작더라도 내 삶에서는 큰 빚을 갚는 것 같은 그런 승리.


작은 승리들이 있어야 사람은 삶에서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고 어떤 학자가 말했었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성취감을 주는 작은 승리들. 반대로 작은 실패들이 모이고 모여 낮은 자존감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 나이에 학교를 떠나야 하고, 가난한 부모, 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부잣집에 하인으로 일하게 되는 것. 이 작은 사연들이 모이고 쌓여 이루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 내 삶은 지금 이렇지만 '너'는 나보다 잘 됐으면 좋겠어-하는 마음으로 남을 돕는 선한 마음. 그런 가난하고 소박한 미스터 몰슬리의 인생에 가장 찬란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브라보 몰슬리 씨!


그리고, 브라보 우리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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