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 운전하다 나지막이 소리 내어 "엄마-"하고 불러본다. 오랫동안 불려지지 않은 그 이름은 낯설게 허공을 헤매다 어색하게 흩어진다. 내 입에서 나오는 그 이름이 어색한 날이 올 줄이야, 하며 내가 멋쩍게 웃는다.
내게는 하나의 종교 같았던 엄마가 없이도 원망스럽게도 세상은 잘 흘러가고, 사람들은 여전히 출근을 하고 웃는다는 것이 그토록 낯설었던, 엄마를 보내드린 후의 그 첫날이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엄마 없이 내 삼십 대를 오롯이 보냈구나.
큰 수술을 하고 깨어나던 날 '와, 생살을 찢는 건 이렇게 아픈 거구나'하며 모르핀으로도 잦아들지 않는 통증에 몸부림을 치다가도, 서늘하게 차가운 엄마 손을 잡으면 나는 잠이 들었다. 신기한 진통제를 손을 통해 공급받은 양 온몸을 내리누르던 통증은 잦아들고 나는 금세 잠에 빠졌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기진맥진해 있던 엄마는 내 병상을 지키느라 그 날 하루를 온전히 내 침대 곁에 계셨어야 했다. 배탈이 난 내 어린 배를 손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며 "엄마 손은 약손 혜원이 배는 똥배-"하던 그 약손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본 날이었다. 엄마는 내게 종교와도 같았다.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보냈다는 어머니라는 존재- 신의 손길이 숨어있는 나의 작은 신전이었다.
엄마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밤 꿈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하고 묻지만 상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는 전화를 건 이가 엄마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래서 꿈에서 울고 울며 길게 연결된 전화선을 잡고 달리고 또 달려서, 동산을 마치 날으듯 넘고, 더 큰 산을 구르듯 오르고 넘어, 그 긴 전화선 맞은편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만났다. 울음을 크게 터트리며 그 뒷모습을 얼싸안는 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내 어머니. 긴 항암으로 지친 엄마의 얼굴이 나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안아준다. 그 체온, 그 옷의 촉감, 그 눈빛의 그리움.
7년을 암과 싸우는 분을 놔두고 나는 그 병의 종착지가 죽음일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언제든 엄마가 안 좋아지시면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은 내 젊음을 낭비하지 않으리라는 조바심에 떠밀린 유학길이었다. 2년 후 어머니는 합병증인 폐렴 증상으로 내가 시카고를 떠난 지 4시간 만에 소천하셨고, 14시간 후에 인천에 도착한 나는 공항에서 어머니 소천 소식을 들었다. 종교 같았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유학길은, 나의 전부 같았던 그분이 나를 기다리다 눈을 감게 하는 길이 되었다.
보고 싶은 마음과 죄책감이 뒤엉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마도 이 짐덩이 같은 마음은 엄마를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이렇게 내 심장에 달라붙어있을 것이다. "뭐하러 그런 걸 달고 있어"라고 타박할 엄마라는 것을 알지만, "언니 아직 안 왔니-"하며 힘겹게 눈을 뜨고 나를 찾았다던 동생의 말에, 몇 시간 전에 끊어졌어야 하는 숨을 나를 기다리느라 억지로 힘겹게 붙들고 있으셨다던 그 이야기에, 나는 이 짐덩이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고서야 밤새 울며 엄마 말을 잘 들었다던 그 청개구리 이야기처럼,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야 어머니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꼭 일 년 후, 다시 꿈에서 나는 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긴 여행의 여독이 주는 긴 한 숨을 쉬고, '이제 집이다-'하며 초인종을 누른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환한 빛이 쏟아진다. 그 밝은 빛 안에서 내가 삼십 년 동안 본 중 '우와 진짜 예쁘다'라고 생각했던 예쁜 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옷을 입고 날 맞이한다. 항암 때문에 머리가 빠지고 지친 엄마가 아니라, 예쁜 단발머리를 하고 예쁜 정장을 입은, 건강한 엄마가 환한 웃음과 함께 두 팔을 벌리며 날 맞이한다. "엄마!"하며 큰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 품에 안기고, 나는 내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참 이상하다. 나는 그 꿈 이후로 엄마가 잘 계신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빠와 아웅다웅하며, 우리가 그동안 키웠던 강아지들과 길에서 돌봤던 고양이들을 여전히 돌보며, 한동안 은퇴 후 하셨던 전원생활처럼 고즈넉하고, 천천히 흐르는, 그러나 천국 같았던 그 삶을, 지금 천국에서 즐기고 있으실 거라 생각하게되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그리움을 조금은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고, 가슴을 옥죄는 듯한 죄책감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은 암이 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끝을 모르는 통증으로 지쳐가지 않아도 되고, 한창 고왔던 그 모습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나와 내 동생을 한결 밝게 기다리고 계실 거라 생각하게 됐다.
언젠가 내가 이 긴 여행을 마치고 여독이 쌓인 긴 한 숨을 뱉은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그 집의 초인종을 다시 누르면, 밝고 환한 빛과 함께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그리고 우리 강아지들이 모두 뛰어나와 나를 맞이해 줄 거라 믿는다. 그때는 다시는 내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고, 두 분 곁에서 처음 두발자전거를 배우던 그 어릴 때로 돌아가, 영원을 하루처럼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지금의 내게 이야기해준다. 그러니, 지금의 이 여행을 우선은 잘 마치기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돌아봤을 때 '오, 이 여행도 괜찮았어'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기를. 그래야 내 부모님이 서운하지 않으시지. 애써서 보내준 이 여행을 즐기기를 얼마나 바라실까.
그래서 나의 삶은, 나의 여행이 되고, 나의 사모곡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