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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ug 16. 2018

헤어짐에 대한 예의

나의 당신에게


쓸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게 되는 이 글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글이지만, 아마도 부치지 못할 글이 되겠지. 지난 며칠간 나는 '사랑이 뭘까?'를 참 많이 묻고 되물었어. 나이는 벌써 삼십 대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데,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 아니, 오히려 매년 더 모르게 되는 것 같아. 무엇이 나를 이토록 당신에게 끌어당기는지, 무엇이 당신이란 사람을 마치 저녁나절에 켜지는 아름다운 전등불의 한 순간처럼 내게 반짝이게 하는지, 나는 사실은 잘 모르겠어.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매 순간 가슴 아프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 바람이 시원한 서늘한 저녁 바다가 보이는 곳에, 석양을 뒤로한 채 이제 다가오는 어두움을 밝히려고 팟! 하고 들어오는, 아름다운 전등불같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런 사람이야. 그런 당신을 사랑한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내가 갖출 수 있는 모든 예의를 갖추어서 당신과 이별하려고 해. 최대한 내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존중받고, 지난 우리의 7년이 예의 바르게, 그 빛나는 설렘이 존엄을 잃지 않은 채 끝맺음을 할 수 있게 하려고, 무진장 고민하는 중이야. 어떻게 하면 나는, 우리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헤어짐을 고할 수 있을까.


그동안 당신을 아프게 했던 내 이기심, 내 상처를 보듬으려고 당신을 마구 할퀴었던 내 못난 욕심, 내가 정한 사랑의 모양에 당신을 구겨 넣으려고 했던 뻔뻔한 내 못난 얼굴들.... 그런 내가 너무 힘겨웠을 텐데, 꾹 눌러 참고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당신, 당신의 상처를 벌려 내 상처를 안아주었던 당신의 인내,  한번 참고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으로 만들어주려고 발자국 움직여주었던 당신의 얼굴들...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하면 그것도 내 못난 이기심이지. 나는 지금 참 미안한데,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왜인지 미안하다고 말하면, 우리가 함께 한 지난 7년이 불쌍해지는 것 같아서, 그 말은 눈물과 함께 꾹 참고, 그런 말로 우리의 마무리를 짓지 않으려고 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했었어. "당신과 같은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거예요..." 그냥 알았어 처음부터. 당신은 내 최고임을. 이상한 말인데, 우리가 끝까지 함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후에도 당신과 같은 사람은 없을 것도 알았어. 그저 그 끝이 조금 더 늦게, 혹은 아주 오지 않기를 바라기는 했었지만 말이야. 


내 사랑, 당신은 언제나 내 최고야. 내 과거에 당신을 알지 못했던 때도 당신은 내 최고였고, 이후에도, 당신은 언제나 내 최고일 거야. 마치 카이로스의 시간처럼, 당신은 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의 현재에도, 그리고 내 미래에도 언제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우리가 비록 함께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일부가 내 안에 남아서, 마치... 어떤 형태로든 계속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서 나는 우리가, '우리'가, 행복할 거라고 믿어. 그래서 언젠가 당신이 새 사랑을 시작하고, 나도 새로운 모양의 사랑을 또 만나서, 전혀 다른 곳에서 각자 삶을 살아가고, 또 그렇게 만족하고 지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괜찮아. 이미 우리 사랑은 '완전'해졌으니까. 우리의 시간은 이것으로 완결을 지은 것 같아. 만족스러운 완결이었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에게. 


내 사랑아,

당신을 향한 나의 예의는, 울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지난 7년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야. 내 삼십 대를 오롯이 당신과 보냈네. 그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내 삼십 대를 당신으로 채울 수 있어서 나는 천국처럼 행복해. 미친 듯이 배를 잡고 웃어대며, 목이 쉴 때까지 몇 시간을 통화하며, 가끔은 서로를 할퀴며 상처를 내며... 항상 무섭거나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마치 종교처럼 당신에게 전화를 하곤 했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게 조금 무서워. 내 아픈 모습을 모두 보고도 사랑해준 당신을, 나는 어떻게 내 마음에 그려내야 할까. 지나간 사랑이었다며 가볍게, 마무리하지 않은 그림이 아니라, '완결'을 낸 사랑이기 때문에 끝까지 붓의 무게를 잃지 않은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어. 


내 마음의 도서관에 가장 깊은 한 장소에 예쁘게 테두리를 두른 양장본으로 된 책으로 꾸려내어, 당신을 깊게 그린 붓끝으로 담아내고 싶어. 그럼 나는 무섭고 외로울 때마다 도서관 문을 혼자 열고 그 깊은 곳에 가서, 희미한 등불을 벗 삼아, 당신을 읽어야지. 당신과 내가 아름답게 지어낸 지난 '우리'를 아주 가끔은 현실로 불러내어, 우리가 그때 그렇게 아름다웠노라고, 지금의 내게 이야기해주어야겠어. 




사실은, 많이 미안해. 어쩜 그렇게 작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너무 부끄럽고, 자기 마음에 소금까지 뿌려가며 낸 생채기에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호호 불어가며 약을 바르고, 슬퍼할 자기 심장을 내가 꼭 껴안고 위로하고 싶어. 

그런데, 그러면, 왜인지 안될 것 같아. 나는 언제라도 또 마음이 좁아져서 당신의 상처는 보지 못하고 내 상처만 아프다며 당신에게 비명을 질러댈 거야. 당신이 피를 흘려야, 그때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가 여태 당신을 칼로 찌르고 있었던 것을 깨닫겠지. 이 일을 또 당신에게 반복할 수는 없어. 

이렇게 못난 나를 7년이 지난 이제야 깨달아서, 미안하다고 말할 없을 만큼 미안해. 

이렇게 못난 나를, 그동안 가만히 안아주어서,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워.

이렇게 잔인한 나를, 그동안 사랑해주어서,......



......




당신을 향한 내 사랑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로,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로,

나는, 지금의 우리에게 안녕을 고해야 할 것 같아.

나의 당신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고,

당신의 나는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 우리의 안녕은 아름답게 짜인, 

씨실과 날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교차된

아름다운 태피스트리의 마지막 짜임이 될 거야. 

푹신하고 따뜻해 가만히 몸을 누이면 

감겨오는 온기에 스르르 잠에 빠질 만큼 그런 좋은 태피스트리 말이야. 

우리는 그동안 참 아름다웠어, 그치?



내 사랑, 

당신의 장난기 어린 웃음, 

따뜻한 눈빛,

그 목소리...


모든 것이 내 안에 담겨있어서,

나는 지금도 당신을 그려내.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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